안녕하세요, 20대 후반의 애청자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아마 잘 겪어보지 못했을(앞으로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2023년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혈액암 중 하나인 림프종, 그 중 호지킨림프종에 걸렸어요.
6월에 최종 판정을 받고, 7월부터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예정으로는 2024년 1월 중순 무렵에 치료가 끝날 거 같아요.
다행히 치료는 꽤 순조롭습니다.
중간에 토를 너무 심하게 해서 치료를 미루는 등 고비의 순간이 있기도 했지만,
초반 4회 치료 후에 실시했던 중간 평가에서 이미 완전관해 수준에 도달했대요.
(완전관해는 몸에 암의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태를 의미하며, 보통 완전관해 상태가 5년 유지되면 완치라 판정합니다.)
이젠 계획대로 남은 치료(이제 4회 남았네요)만 잘 견뎌내면 되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었던 여러 일 중 가장 큰 불행이었지만,
그 큰 불행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작은 행운들이었습니다.
우선 아무런 자각 증상이 없이 병이 커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저의 경우에는 하필 암세포가 기도를 눌러서 목이 많이 불편했기에 이상이 있음을 비교적 빨리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제게 첫번째로 찾아온 행운입니다.
여기에 더해 림프종 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좋은 편에 속하는 호지킨림프종 판정을 받은 것도 행운이었고,
항암제의 부작용이 제게는 그래도 견뎌낼 만한 정도로 찾아온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중간평가 결과가 매우 긍정적인 것 역시 행운이구요.
주변의 많은 사람들, 가족과 친척, 친구와 동료들의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행운입니다.
건강하다, 잘 이겨내고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다니, 참 감사한 일이지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나갈 수 있었던 것 역시 행운입니다.
물론 이 작은 행운들은 우연히 내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찾아내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암에 걸렸다고 전에 없던 행운들이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진 않았을 겁니다.
늘 내 곁에 함께했지만 그 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겠지요.
큰 일을 겪고 나선 주위의 사소한 일들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눈길이 가지 않았던 곳에 눈길이 가게 되었고,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늘 나와 함께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행운을 찾아냈습니다.
또 래퍼 김하온 씨가 하셨던 말씀 중에 제 삶의 이정표로 간직하고 있는 말이 있는데요.
“원하지 않는 경험에도 무조건 배움이 있어요.” 라는 말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암은 당연히 원치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하지 않았던 경험만으로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항암치료라는 피할 수 없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중입니다.
그 과정동안 겪게 되는 많은 일들에서 배움을 얻고 있고,
느끼게 되는 많은 감정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저가 사실은 약사인데요.
약국에서 일하다 보면 아주 가끔 항암치료를 하고 계신 분이 찾아와 이것저것 문의하시곤 합니다.
정말 부끄럽지만 그 때의 저는 자신이 없었기에, 최대한 방어적으로 말씀드리며 돌려보내곤 했습니다.
음.. 이제는 감히 자신 있다는 말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을 만큼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방장님께서 휴식기를 보내며 한층 더 성장한 침착맨이 되신 것처럼,
저 역시 항암치료를 계기로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우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미 많은 부분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성장이겠지요.
2023년, 절반을 항암치료와 함께했기에 솔직히 많이 힘들었는데요.
그래도 얻은 것도 참 많았고 충분히 행복했고 외롭지 않았습니다.
만약 침튜브가 없었다면 조금은 외로웠겠지요?
그런 일 없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침튜브를 다채롭게 채워주신 많은 게스트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 중 특히 궤도님께, 저 역시 과학으로 가득 찬 세상을 소망하기에)
회원님들 모두 마음 한 켠엔 ‘이러다 나도 침튜브 나오는 거 아니야?’ 라는 망상을 품곤 하잖아요?
저 역시 언젠가 ‘모든 약의 신’이나 ‘약학민수’로 침튜브에 데뷔하는 꿈을 꾸곤 한답니다.
잘 이겨내고 더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두서 없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읽어주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곁의 사소하지만 소중한 행운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2024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 지 모르겠기에, 방장님의 명언으로 줄이겠습니다.
매번 무엇보다 본인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며 사시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