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 주인공 모티브도 이덕무라고 합니다)
실학자 이덕무의 손자인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은 할아버지 못지않은 업적을 세운 실학자입니다.
이규경은 조선 후기 사상가 중에서도 특히 ‘백과사전의 남자’라 할 만한데, 평생을 관직생활 없이 갓수로 지내면서 지식을 무차별적으로 탐닉합니다. 실학계의 벨코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백과사전식 저서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무릇 사람의 몸뚱이는 약으로 쓰거나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약용하거나 식용한 일이 의학 서적이나 역사서에 실려 있다.
(중략)
천방국(天方國)은 (…) 이 나라에서는 목내이(木乃伊)가 난다. 즉 도구성(陶九成)의 철경록(輟耕錄)에 나오는 바로 그것이다.
천방국에 78세 먹은 노인이 있었다. 그는 중생울 구제하려 제 몸을 공양하기를 소원하였다. 음식을 끊고 그저 몸을 씻으며 꿀만 먹었다. 한 달이 지나자 대소변이 모두 꿀이었다.
죽고 난 뒤 나라 사람들이 석관에 염습하고 시신을 꿀에 가득 잠기게 했다. 관에 날짜를 새겨 묻었다.
백 년 뒤 무덤을 열어보니 밀제(蜜劑: 꿀로 만든 약)가 되어 있었다. 뼈가 부러져 다친 사람이 한 줌을 복용하면 병이 나았다.
비록 저곳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으나, 이를 가리켜 밀인(密人)이라고 한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목내이와 밀인은 미라를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머나먼 애굽의 풍속이 동방에 전해지다보니 좀 과장되거나 어색한 부분이 없잖아 있고, 장기를 뺀다던가 하는 중요 제조과정도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꿀 같은 액체에 시신을 담근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무덤에서 꺼내어 약으로 복용한다’ 등의 뚜렷한 특징을 통해 이것이 미라 이야기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이라 영화의 중국 개봉명도 목내이입니다.)
이덕무의 손자가 결국 애굽으로 통하게 된 것도 흥미롭지만, 진짜 웃긴 점은 따로 있습니다.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 따르면 아란타(阿蘭陀)의 토산으로 목내이가 있다. 즉 서북의 여러 지역도 천방의 밀인 만드는 법을 모방한 것이다.
다만 밀인을 부르는 이 목내이라는 명칭은 뜻은 없고 소리만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연구해 보건대 밀인을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게 부르는 듯하다.
유욱(劉旭)의 《서사기(西使記)》에 따르면, 목내해(木乃奚)라는 사람들이 서역에 있다. 가장 흉악하고 사나운 사람들을 이른다. 밀인을 목내이라고 지칭한 것은 대개 목내해라는 사람들에게서 기원하여 명명된 것인 듯하다.

이규경이 인용한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란 일본 백과사전입니다. 이 당시 나가사키를 통해 서양과의 교류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었던 일본에서는,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와의 접촉을 기반으로 하여 서양 지식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접의 일환으로 등장한 화한삼재도회에는 실제로 서양인들 중에서는 아란타(阿蘭陀)인들에 더 비중을 실어 수록했습니다. 그 아란타인들의 특산품이 바로 미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아란타라는 명칭이 이집트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지명인고 하니,
네덜란드를 구성하는 핵심 지역인 ‘홀란트’를 한자어 발음으로 옮긴 것입니다. ('화란'과 비슷한 작명)
즉 화한삼재도회에 이미 (네덜란드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입장에서도) 네덜란드의 특산품 중 하나로 당당히 미라가 끼어 있을 만큼 미라를 도굴하거나 판매하는 일에 이골이 난 것이고,
그걸 또 조선 실학자 이규경은 “옛날 중국 문헌들에서 말하는 목내이랑 밀인이 이거 맞네. 네덜란드인들은 이런 걸 팔고 다니는구나” 하고 여러 문헌을 고증하며 이들의 도굴 혹은 미라 무역 행태를 기록해버린 셈이 됩니다.
이렇게 동방의 나라들에서는 마치 네덜란드에서 미라가 생산되는 것처럼 백과사전에 잘못 기록했으되, 오히려 그것은 당대 유럽인들의 미라를 향한 열망을 있는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창조적(?) 오해였습니다. 졸지에 조선의 한 선비는 ‘문화유산’이란 개념도 없던 시대의 사람들이 감히 애굽의 문화유산을 함부로 써먹었음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박제해 후손 만대에 전하게 되었으니, 그 투철한 고발정신은 파라오의 은총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겠습니다. 크크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