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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2019

침착맨
23.10.08
·
조회 28804

 

 하루는 넷플릭스를 뒤지고 있었다.

 내가 심심하면 가끔씩 하는 행동으로 리모콘으로 이것저것 쑤셔대다가 넷플릭스를 곱게 끄는 나만의 작은 유희이다.

 그날도 역시나 신나게 만지작대다가 종국에는 끌 셈이었다.

 

 넷플릭스 뒤지기에서 가장 재밌는 건 작품을 누르지 않고 대고 있을 때 자동으로 나오는 영상 보기인데, 이것만 빼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봤던 영상도 좋고 안봤던 영상도 좋다.

 틀어주는 대로 봐야 하는지라 초반 전개 부분을 보기도 하고 절정의 명장면을 보기도 한다.

 기대없이 봤으니 만족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해를 못해도 그만이다.

 작게 왔다가 작게 휘발해버리는 책임 없는 쾌락.

 

 

 그러던 중 '의천도룡기 2019'를 발견했다.

 커서를 옮긴다.

 클릭하지 않는다.

 자동으로 재생되는 의천도룡기만 질겅 씹고 뱉을 생각이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중국식 와이어 액션.

 노란 머리 괴인이 나오는 걸 보니 사손이겠군.

 

 그러고보니 사조영웅전, 신조협려는 읽어봤지만 의천도룡기만큼은 끝까지 읽지 않았다.

 장무기가 명교 교주 되는 것까지만 보고(스포 죄송) 흐지부지됐던 게 기억났다.

 사손은 어떻게 되지?

 장무기는 명교와 무당파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을 할까?

 갑자기 궁금증이 밀려들었다.

 

 '의천도룡기 2019'를 클릭한다.

 그리고 웅대하게 발발발거리면서 날아가는 유대암이 보인다.

 2시간 즈음 지켜봤을까.

 후, 재밌었다. 이제 그만 낮잠이나 잘까?

 그런데 옆에서 은근슬쩍 보던 아내가 재밌다면서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닌가.

 바늘 가는데 실 가는 법.

 어쩔 수 없이 나도 쇼파의 자리를 지킨다.

 

 7시간이 지났다.

 쇼파에는 여전히 아내와 내가 TV 앞에 앉아있다.

 TV에서는 '의천도룡기 2019' 9화가 흘러나오고 있다.

 슬쩍 고개를 돌려봤다.

 아내는 고도의 집중을 하고 있었다.

 이미 식음을 전폐했다.

 

 다음날.

 늦게 일어나보니 거실에는 '의천도룡기 2019'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아내의 눈에는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인다.

 저녁.

 TV가 꺼져있다. 이제 지친 것일까?

 설거지하는 아내 옆을 지나가니 맞은편 창틀에 걸어둔 스마트폰에서 '의천도룡기 2019'가 재생되고 있었다.

 

 다다음날.

 이제는 아예 거실로 이불까지 가지고 나왔다.

 아내는 이불을 둘둘 말고 '의천도룡기 2019' 33화를 보고 있다.

 "3일만에 50화짜리를 다 볼 셈이야?"

 아내가 내쪽은 보지도 않고 화면을 응시한 채 조용히 말했다.

 "그럼 안돼?"

 

 다다다음날.

 결혼식 갈 일이 있어서 아침에 집을 나섰다.

 오늘은 웬일로 TV가 꺼져있다.

 너무 달려서 이번에야말로 지쳤나?

 이른 저녁.

 외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쳤다.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본다.

 넷플릭스를 켜고 '시청 중인 컨텐츠' 항목을 찾는다.

 없다. '의천도룡기 2019'가 없다.

 대신 새로 생긴 '의천도룡기 2019와 비슷한 콘텐츠' 항목에 '사조영웅전 2017'이 있었다.

 

 "그럼 안돼?"

 전날 아내가 되물었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된다.

 안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집중력, 잠재력이 무서울 뿐.

 초사이어인을 경계해 '혹성 베지터'를 폭파시킨 프리더의 마음이 이해됐다.

 

 

댓글
우원박누구냐
23.10.08
BEST
진짜 하루키가 들린 걸까..?
펄순이
23.10.08
BEST
머리만 겨우 감고 방학 내내 삼국지 게임을 했다던 어떤 안산 중학생 소년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2대침착맨
23.10.08
BEST
보통 아닌 부부다..
파인애플피자
23.10.08
BEST
제갈나영 폼 미쳤다
https://resources.chimhaha.net/comment/1696758943133-xik03o4yg2i.jpg
레어닉
23.10.08
BEST
1일1글 ㄷ 할거없었는데 나도 봐야겠다
대감이
23.10.08
똑닮은 부부 ㄷㄷ
고문고문병건인
23.10.08
1일 1글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침카이브
23.10.08
너무 사랑하면 행동도 닮아지는법
홀리쓋
23.10.08
스릴러 인줄ㅋㅋ
유비병건
23.10.08
아 현기증 얼른 다음편 주시오! 이 집 글 참 맛있구먼
고향만두콘
23.10.08
방장의 지독함 약과다...
라잎클립을알고있니
23.10.08
의천도룡기 바이럴이잖슴! 엄청 보고싶어졌잖슴!
이기주의가판치고있어
23.10.08
이 정도 퀄리티의 글을 쓰려면 적어도 2,30분은 써야 하지 않나요? 저같으면 한 시간도 넘게 걸릴 것 같은데.. 매일 쓰신다면 제대로 쉬실 수 있남. 물론 고퀄 수필 너무 조아용
우원박누구냐
23.10.08
BEST
진짜 하루키가 들린 걸까..?
태리야끼
23.10.08
ㅋㅋㅋㅋㅋㅋㅋㅋ
쭈아가
23.10.09
우원박이 모아서 책 내줭
화과산호랭이
23.10.09
그럼 안돼?
dlwlrma
23.10.08
”그럼 안돼?“
게살버거
23.10.08
저도 밥먹기 전에 넷플 미리보기 넘기다가 밥 다먹을때까지도 미리보기 보고 있어요ㅋㅋㅋ
책임없는 쾌락ㅇㅈ
조운빵
23.10.08
ㅋㅋㅋㅋ 난 왜이렇게 방장님 가족 얘기가 좋지 제일좋아~
잡덕맨
23.10.08
아 포만감 무쳣다 글이 참 맛나오 방장
nfnfhi
23.10.08
이글루스에 재밌는 수필들이 많았는데
갸라도스
23.10.08
글 조오오오온나 잘 쓴다
칌챡촥
23.10.08
잼따
cgt
23.10.08
김용 무협세계관은 약간 무협+막장들마 느낌이라 중독적 맛이 강해서 빠져들면 나오기 힘든듯
소오강호 녹정기 천룡팔부도 재미있는데
냐옹냐옹냐옹이
23.10.08
글 잘쓰신다 술술 읽히네
빠큐거북이
23.10.08
신삼국지부터 보라고~~~~
소원듣는돌
23.10.08
은근슬쩍 글쓰기라면서 일상만화 콘티짜는 냄새가 난다는 착각이 듭니다
부산뚜비
23.10.08
쏘맘이 저렇게 달릴정도로 재밌는건가요??? 저도 한번 봐야겠네요 ㅋㅋ 중드는 황제의딸 말곤 본적도 없는데 ㅋㅋ
침착맨 글 보는 재미가 있네요ㅎㅎ
에겐맨
23.10.08
글을 이렇게 자주 올려줄줄은 몰랐지
아데마르
23.10.08
항상 보면 쏘맘님도 씹덕끼가 좀 있으신거 같음 ㅋㅋ 두분 잘 어울리고 잘 만났음 ㅋㅋ
으이구침착해
23.10.08
의천도룡기 봐볼까봐요
대모산두꺼비
23.10.08
자주올려줘서 고마워요
닉네임변경123
23.10.08
의천도룡기 정주행 간다! 복귀 후 의천도룡기 설명해 할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학습해야지
오니기리
23.10.08
아ㅋㅋㅋㅋ못참지 나도봐야징
특급다라이
23.10.08
아니 매일 기다리게되네요 또.. 왜이렇게 소소하게 재밌는건데!!!!!!!
대감이
23.10.08
나중에 방장 글 모아서 수필집 내줬으면 좋겠다 소소하게 읽는 재미가 가득함
fok
23.10.08
환상의 커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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