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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디쉬

침착맨
23.10.06
·
조회 27905

 나에게 학창시절 했던 고전게임은 볼 때마다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게 하지만, '브랜디쉬'라는 게임은 특히나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일단 게임 전면에 나선 '도라 도론' 일러스트가 매혹적이었고, 당시 '팔콤'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이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당시 '팔콤'은 부드러우면서 날카로운 도트 그래픽을 선진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학창시절 게임잡지에서 '브랜디쉬' 지면광고를 볼 때마다 설레곤 했다. 참고로 지금이야 광고가 나오면 귀찮지만 그 시절 게임잡지 지면광고는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좋아'였다. 새로 나온 게임 구경하기가 좋았고 광고인지라 해당 게임의 멋있는 부분만 범벅을 해 놓기 때문에 사실상 보기만 해도 배불렀다.

 

 못만든 영화는 티저가 더 재밌다는 말도 있잖은가. 게임잡지 지면광고도 딱 그랬다. 행복 가스를 마신 것 처럼 게임잡지 지면광고 구간은 모두가 신나고 행복하고 열정적이고 정의롭고 명석하고 의리있고 감성적이었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그때의 내가 게임잡지를 광고부터 보고 또 보고 했던 이유였던 것 같다.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외로웠고 감수성이 예민했다. 혼자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고 무기력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만화와 게임은 그만큼 부족한 나에게 없는 환상의 세계였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비리비리한 중삐리 침착맨은 그러던 어느날 머릿속에 막연히 기대하던 '브랜디쉬'를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게임잡지만 보면서 군침을 흘리던 과거는 이제 그만. 드디어 컴퓨터에 깔고 개처럼 즐기기만 하면 됐다.

 설치중, 설치 완료, 프로그램 실행, 고막을 찌르는 사운드 블라스터의 오프닝 음악, 그리고 화려하게 화면 정중앙에 박히는 로고.

 이제 간다!

 

 1시간만에 찍 쌌다.

 그것도 10분만에 때려치고 싶었는데 미련 때문에 50분 더 부여잡은 것이다.

 개같은 게임이었다.

 

 

 시점이 주인공 1인칭 고정인데 화면을 돌리면 세상이 돌아간다. 요즘 FPS 게임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랑은 다르다. 이 당시 기술력으로는 실시간 화면전환이 되지 않기 때문에 화면을 돌리면 90도 칼각으로 세상만물이 휙휙 변해버리는 것이다. 한 번 화면을 돌릴 때에는 괜찮은데 10번 정도 넘어가기 시작하니까 시신경이 파괴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 시력이 2.0이었으니까 받은 데미지는 더욱 컸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청력이 좋으면 음공에 더욱 취약하듯이.

 

 게다가 무기 내구도라는 신통방통 죽통 때리고 싶은 시스템이 있었다. 요즘에야 무기 내구도라는 개념이 있어서 이해가 안가겠지만 '브랜디쉬'의 무기 내구도 시스템은 요즘의 것과는 궤를 달리 한다. 예를 들어 장검 내구도가 20이면 한 번 휘두를 때마다 1씩 닳아 없어진다. 그 말은 20번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소인배가 만들었는지 나오는 무기들의 내구도가 10, 15 이런 식으로 더럽게 짜게 나왔다. 빡빡한 무기 내구도만큼 쓸 때마다 간장이 빡빡하게 경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칼을 여러 자루 가지고 다니면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굉장히 협소한 인벤토리 용적 때문에 여분의 칼을 더 챙기면 물약을 그만큼 못가지고 다닌다. 열쇠를 가지고 다닐 것이냐 물약을 가지고 다닐 것이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상황도 생긴다. 가지고 가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용적이 부족하니 앞날에 어떻게 될지 예측해서 아이템을 추리고 추려야만 한다. 시신경, 간장에 이어 뇌세포가 연쇄파괴 되는 느낌을 받는다. 고추가 저려온다.

 

 여기까지가 아쉬워서, 참고 하다보면 깊은 팔콤의 깊은 낫토 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3회, 4회씩 재도전해서 알아낸 브랜디쉬의 감상이다. 해볼수록 느껴지는 건 낫토가 아닌 구토.

 

 10년 후에야 이 '브랜디쉬'라는 게임이 이 특유의 시스템으로 단단한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90도로 휙휙 돌아가는 1인칭 시점은 화면을 돌릴 때마다 급변하는 맵의 성질을 이용해 퍼즐요소로 즐길 수 있게끔 했다는 걸 알았다. 무기 내구도 시스템은 극한의 상황일 때 짜내는 재미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주인공이 때릴 때마다 힘이 올라가고 맞을 때마다 체력이 올라가고 마법을 쓸 때마다 지능이 올라가고 마법을 맞을 때마다 마법 방어력이 올라가는 점을 활용해 담금질과 두드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다 것도 뒤늦게 알았다.

 

 함께 하고자 오랜 시간 망상했지만 현실이 다름을 깨닫는 건 너무나 저릿저릿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즐기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포기했을 때의 뒷맛.

 일방통행의 순애보.

 무능해서 보내줘야 했지만 끝까지 가면 꿀맛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좌절감.

 훗날 유튜브에 올라온 그 때 그 고전게임의 공략 영상을 틀어놓고 보면서 달래는 그때의 아쉬움.

 달래지지 않고 오히려 서글퍼지는 새벽 3시 중년의 39살.

 

 모든 게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되지만 아직도 그때의 '브랜디쉬'를 지나가다 발견하면 나는 생각에 잠긴다. 

 

댓글
dlwlrma
23.10.06
BEST
솔직히 얘기해 주세요.. 글 쓰고 싶어서 휴방 하는거 맞죠..?
주펄떡
23.10.06
BEST
[설레이곤]이 아니라 [설레곤]이겠지! 마춤뻡용사겜에서도 틀렸던 건데 아직도 모르나?
곰무원
23.10.06
BEST
금거맨이잖슴 ㅋㅋㅋㅋㅋㅋ
https://resources.chimhaha.net/comment/1696587668386-le6b7nxpoei.png
하스펄
23.10.06
BEST
https://resources.chimhaha.net/comment/1696587948216-le9fmef4a6o.png
침착맨 글쓴이
23.10.07
BEST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콜로라도
23.10.06
아 맛있다
고양이
23.10.06
술술읽히네 ㅋㅋㅋ
할머니버선찢기
23.10.06
여기서 화자가 말하는 "브랜디쉬"라 함은 대중들에게 되묻는 어릴적의 향수임을 의미한다.
수많은 어린 시절 매순간을 지루해하던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고 향취에 젖듯 화자, 침착맨은 정작 갈구하던 브랜디쉬를 지루해하고 혐오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 그때의 추억은 누군가의 최고였으며 나에게도 최고가 될수 있던 한번의 기회임을 깨닫고 남몰래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어릴적 불편했던 모든게 문득 그리워지듯, 개같은 시점 개같은 내구도, 개같은 게임을 욕했던 그 순간을 화자는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릴적 즐겨탄 시소를 타도 그때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브랜디쉬의 영상을 봐도 아쉬움만 남는 화자의 심정은 덧없는 과거의 영광을 남몰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도라도론은 팔콤이 낳은 최고의 히로인 중 한명이다.
아차차우리방장침착맨
23.10.06
오랜만에 두기런처를 돌려볼까 하다가 야추가 저려서 포기합니다 껄껄
병건듀
23.10.06
고추가 저리면 야추에 대고 야옹~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우리아이술안주
23.10.06
금거맨 하여튼;;
특급다라이
23.10.07
아니 이 아조씨는 말맛도 미쳤는데 글맛은 더 좋네... 휴방 오히려 좋을지도...?
상중하
23.10.07
아조씨 글 진짜 잘쓰네,,알지도 못하는 개같은 게임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수가
왕짱맨
23.10.07
방장 고전게임 한창 열심히 하던 때에 방송에 유입되서 그런지, 갑자기 뭔가 그리운 마음이 올라왔네요. 폭소소림사, 홍길동전, 로망레느, 그림판당고 딱 그때즈음에 침착맨님 열심히 봤는데...
옾옾옾카페스탈
23.10.07
사석에서 안하던걸 왜 글에다 하는거냐고~~
테스타롯사
23.10.07
글 올려줘서 고마운데 세줄 요약도 부탁할수있을까요
가독성 아까비라
병건듀
23.10.07
금거맨
한시간 만에 찍 쌌다
야추가 저렸다
-끝-
DogCat8
23.10.07
방장이 최근에 블로그 애기했던게 빌드업이었잖슴~ 방장은 타고난 이야기꾼, 글쟁이잖슴~
이병건 수필집 기다립니다
침드리만드리
23.10.07
침로그 넘 조코
러브제콜
23.10.07
침터팬
측량기사K
23.10.07
아~ 서글프다
침착한오리
23.10.07
뭐라도 올려주니 그저 좋아. 그냥 점이라도 찍어줘, 어떻게 뻗어나갈지는 그뒤에 생각해보자구요
호에엥놀라는하후연
23.10.07
음성지원되는 이유는?
까와이병GUN
23.10.07
와 씨 고봉밥
침착하지못해슬픈아이
23.10.07
신통방통 죽통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음을참지못하는병이있어요
23.10.07
어우 맛있어
침통한침통령
23.10.07
금 거 완 료
우보니
23.10.07
필력 무쳤다 진짜
신이나
23.10.07
와 중딩 때 시력이 2.0이셨다니요
요샌 눈이 안 좋다는 얘기 많이 허셔서 몰랐습니다
게임 뉴비가 시작하기엔 너무나도 하드코어한 시스템과 난이도를 가진 브랜디쉬였네요 ㅋㅋㅋ
짭보기
23.10.07
이 행님 참 글맛이 좋다니까 ㅋㅋ
은근 계속 라임 맞춘 잔잔바리 표현들에 아니 왜 거기가 저려와요 ㅋㅋ 하고 웃기면서도
눈과 간장과 뇌를 담금질했다면 얻을 수 있었던 마니악한 쾌락을 놓쳐버린 아쉬움이 절절하며
다시 찾은 30대의 삶을 은근 즐기는 모습이 귀엽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띵작을보면꼬리흔듬
23.10.07
글 재밌다요. ㄹㅇ. 방장 왜 겜 리뷰 안하삼? ㅎㄷㄷ. 무기 내구도 시스템은 악랄하고 좀 짜긴하지만, 게임성이 뒷받침 되면 또 쫀득해서 쓰신대로 좋을 거 같기도 하군요. 실제 현실 무기들은 내구도가 높지 않았을터이니 현실감도 있고. 이렇게 보니 ㄹㅇ 게임 시스템과 구성이 엄청 중요하군요.
누룽지콘
23.10.07
게임잡지 얘기 나오니까 그립네요 어릴때 매달 종류별로 3권씩 샀었는데
그리고 광고와 공략 보면서 굶망굶망하다가 막상 해보면 상상한 거랑 달라서 시무룩ㅋㅋㅋㅋ
쫄깃쫄깃
23.10.07
BEST
일단 게임 전면에 나선 '도라 도론' 일러스트가 매혹적이었고
https://resources.chimhaha.net/comment/1696643097038-7azysa2ai1v.webp
신이나
23.10.07
병건이형 이거 저장각이다 추억이자나~~~
오우거심리학과교수침착맨
23.10.07
와 하체 운동좀 하셨네
두다리갈매기
23.10.07
와 진짜 그때 그시절의 맛이다 캬
회갱1
23.10.07
금거맨
보롬보롬
23.10.07
글의 전개가 참 좋다 정말로.
침착개구리
23.10.07
티스토리 이글루스 감성 느껴짐 ㅋㅋ
심벌즈맨
23.10.11
ㅋㅋ 아시는구나 그 갬성 너무좋아~
마늘아저씨
23.10.07
명필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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