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글은 위 방송의 후기입니당.
1.
지난 몇 년간 방장의 팬으로 지내면서 여러모로 방장이 부러웠습니다.
느긋함, 여유로움, 어딘가 세상만사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움 같은 건 제가 가진 성질이 아녔거든요.
침하하의 침돌이, 침순이들은 아시겠지만 특히 '견적 보고 미치세요' 인터뷰를 보고는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다' 싶으면서 적잖은 충격도 먹었습니다.
저는 '무작정 열심히'하는 게 답인 줄 알았거든요.
적어도 수능 열심히 치룬 19, 20, 21살에는 그랬어요.
2.
시간을 좀 빠르게 돌려 20대 중후반부터는 매 해가 보너스 게임 같은 기분이었어요.
나쁜 뜻으로요.
방장이 언뜻 말한 것처럼 '내가 더 이상 살아야 될 이유가 있나?'란 의문을 지울 수 없었어요.
삶이 우울하고 불안해서 더 이상 지속하지 못 살겠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서 할 게 남았나?'라는 느낌 말이에요.
위 의문은 '내가 이 세상에서 뭘 더 해야 하지?'라는 말과도 같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계속 열중하고 싶은 무언가를 갈망했거든요?
근데 찾지 못했어요.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는 거에요.
그 와중에 자기 일을 찾아가고 있는 친구들과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혹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는 주변 어른들 틈에서
저는 계속 할 말을 잃어갔습니다.
3.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인 줄 아는데 사실 아니에요.
위에서 밝혔든 수능을 세 번이나 봤고, 그 덕에 들어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탓인 걸 알아요.
솔직히 어린 제가 들으면 놀랄 곳에 들어갔습니다.
그건 어찌보면 방장이 매번 말하는 운의 덕이었죠.
대입 후에도 참 열심히 했습니다.
공부하고 시험 보는 게 재밌긴 했어요.
공부하는 가닥이 있었으니 대학교 시험이야 툭 터놓고 말해 못 할 일은 아녔죠.
그렇게 살았더니 어느새 졸업하라지 뭐에요..
'아니 나는 준비가 안 됐는데..? 나 뭐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나가?'라는 마음이 컸고,
추가 학기니 뭐니 좀 미루고 싶은 마음이 산더미였는데 누구한테도 말 못했어요.
때 맞춰 나가는 게 답이겠거니 싶어 졸업했습니다.
그러곤 그냥 저냥 살다가 회사들 전전긍긍했어요.
가장 최근에 다녔던 곳은 수습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도 실패했습니다.
사실 '잘 됐다!'했습니다.
열심히는 했지만 왜 그래야하는 지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거든요.
4.
여기 계신 모두가 방장의 무기한 휴식을 아쉬워하면서도 응원할 줄로 알아요.
저 또한 마찬가지에요.
'쉬다 오면 다시 방송 키겠지'라는 기대보다
'내가 좋아하는 저 사람이 한숨 돌렸으면 좋겠다'에 가까워요.
왜 전무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침착맨이 자기 알을 깨기 시작했다", "이제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 "그건 시간이 걸린다" 등등
본인은 매번 부정했으나 치열하게 삶을 산 탓에 유예상태로 두었던 자신에 대한 물음에 드디어 한 줄 씩 적어나갈
시간을 갖게 된거라 봐요.
기한을 정하지 않아 오히려 좋더라구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인데 "이 때 돌아올게!"라고 약속했다가 괜한 실망을 안길 바에야,
그래서 본인도 아쉬워지는 상황을 만들 바에야,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건설적이지 않나 싶어요.
5.
대충들 눈치채셨겠지만 방장이 갖고 있는 고민이 제 것과 닮은 듯해 길게 늘어놓게 됐습니다.
'뭘 해야 되지', '내 쓸모는 뭐지', '하고 싶은 건 대체 어떻게 찾는거야' 등등
거기에 저는 '아, 난 참 애먼 곳으로 돌아오며 내 시간을 버렸구나'라는 후회도 좀 드는데 방장은 어떨 지 모르겠네요.
어쩔때는 '신이 정해준 운명을 나는 손 놓고 따르고만 싶다'라고 간절히 바란 적도 있는데,
또 가만히만 있으면 아무 것도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뭐라도 하려니 참 기운도 없고 말이죠. 나 원참~
6.
이런 말 저런 말 하다보니 글이 꽤 두툼해져버렸네요.
침착맨 팬 커뮤니티에 같이 있는 사람이란 빌미로 제 넋두리 들어달라 호소한 것 같네요(사실 맞음).
방황의 터널 중간에 있는 입장이다보니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게요!'도 '죽고 싶어요'도 아닌 제 인생을 어째야 좋을지 30분만에 알 수 있을리가 없죠.
방장도 그럴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 쉰다고 미래를 어떻게 살면 좋을지 알 수 있을까요.
한달이면 충분할까요?
아니 그런 중차대한 사안을 무슨 보고서 마냥 뚝딱 해결 지으련 마음가짐은 애초에 글러먹었다고 봅니다.
방장, 원하는 만큼 쉬세요.
아주 소소하한 맘에 불과한 듯 싶었어도 하고 싶었던 것 다 하시고.
딱히 하기 싫은 것도 없다 하셨는데,
하기 싫은 것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원래 내 일은 코 앞까지 바짝 붙여 놓고 보게 되니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팔짱도 좀 껴보고,
뭐 이런 저런 참견도 해보고 말이죠.
방장, 행복하십쇼.
저는 방장 덕에 아주 행복했습니다.
그럼, 비타오스
P.S. 턱 수술비는 꼭 받아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