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여름 군번, EBC#106X 입니다.
전방사단 헌병대대 DP출신이구요 어느 사단인지는 말 안해줄거잖슴
디피는 아시다시피 탈영병 찾는 군인들인데요
그런 사건은 너무 흔해서 이 글에 적진 않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탈영병 체포조로서의 경험이 아닌
수사관의 수사를 보조하는 군사법경찰리로서
(법 개정이 이루어져 이제 병에게는 군사법경찰리 신분 부여x)
지내며 들었던 생각이나 경험을 적어볼까합니다.
보통 디피는 탈영사건이 발생하면 밖에서 활동을 하지만
평시에는 수사과 사무실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수사병의 문서작업을 분담해서 돕거나,
장기군탈자에 대한 서류들과 함께
선배 디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한 데이터를 분석하며
새로운 검거작전을 세워 상부에 건의하는 업무를 합니다.
실제로 이런 건의들은 담당관의 심의를 거쳐 상부의 승인이 나면
작전계획대로 장기군탈자 체포작전에 돌입하곤합니다.
또한 헌병대가 군대의 경찰서다보니
여러 사건사고들이 모입니다.
저는 수많은 사건들을 보았습니다.
사건 현장에 수사보조 역할로 자주 출입을 하였는데요
가슴 아픈 사연들이 참 많습니다.
폭발사고로 한쪽만 남은 시체를 보았습니다.
복귀버스를 놓쳐 간부로부터 전화로 폭언을 듣고
겁에 질려 탈영하였던 일병과
다음날 야산에서 군화끈에 매달려 있던 그의 시신.
그리고 아들의 죽음에 절규하는 어머니의 소리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전역 며칠 전에 후임들 작업 돕겠다고 나섰다가
손을 잃으신 분도 보았지요.
부대 내 가혹행위와 부조리는 여전히 풍부합니다.
군대에서 폭행과 폭언을 막으니 다른 쪽으로 악랄해지더군요.
후임의 국에 담뱃재와 꽁초를 넣고 먹게한 선임과
그걸 삼킬 수 밖에 없었던 후임의 얼굴을 난 보았습니다.
그 두 사람의 피의자 조사와 참고인 조사에 모두 참여인으로
참여하여 생생한 증언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고작 스무살 남짓의 청춘들이 군대에서 만났다는 이유로
인격을 깎아내리고 짓밟고 증오하게 되는..
이 기막힌 부당함에 어이없는 웃음을 짓기도 했죠.
한번은 저와 입대날짜가 같은 가혹행위 피해자가
진술을 하러 수사과에 출석하였습니다.
아직 수사과에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적응 중이던 저는
그 친구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까요?
흡연장을 찾는 그의 말에 제가 나서서 흡연장으로 안내했지요.
저는 비록 담배를 태우진 않지만 그가 조용하게 담배를 태울때
담담히 위로와 격려를 보냈던 그 밤의 달빛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일 년 뒤 악랄한 가해자로서 다시 수사과를 찾은 그를
역시 저는 보았습니다.
적어도 저는 인간이 모인 곳이라면 약간의 자정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겉보기엔 지저분해 보이는 갯벌이 스스로 정화하듯이 말예요.
하지만 그 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갯벌이 아니라 늪이구나.
제가 쫓았던 그들처럼 저도 저 시멘트 담을 넘고 싶었다면
믿어지시겠습니까?
저는 헌병에 지원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선임이 되면 적어도 부조리 하나는 바꾸고 나오자.
그러나 제가 전역하던 날까지도
병사들은 식당에서 젓가락을 쓰지 못했습니다.
침하하에 군대썰 올라온거 보고,
그리고 요새 화제인 드라마 디피 소식도 들리니
머릿속 한 켠으로 치워놨던 그 때 이야기를 적어봤습니다.
두서없이 적어서 읽기에 힘드실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디피 관련해서 궁금하신게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말머리는 미스터리 공포로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