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있을까? 돈을 받고 사람을 노리는 살인청부업자 -
영화나 소설, 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범죄자 캐릭터로 살인청부업자가 있다. 타인의 의뢰를 받아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범죄자다. ‘고르고13’처럼 청부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캐릭터를 아예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도 있다. 게임에서 살인청부업자는 주로 적으로 등장하지만, ‘히트맨’ 시리즈처럼 직접 살인청부업자가 되어 목표를 살해하는 게임도 드물지만 있다.

이런 만화나 게임에서 등장하는 살인청부업자는 대개 목표의 제거를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고,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냉철하고 침착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현실에도 과연 그런 살인청부업자가 존재할까? 다른 사람의 의뢰를 받고 사람을 죽이는 범죄자, 살인청부업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살인주식회사
돈이나 재물을 받고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살인청부업자는 매우 오래된 범죄자 유형이다. 구약성서 ‘에스겔서’에도 ‘돈을 받고 살인을 하는 자’에 대한 언급이 등장할 정도다. 에스겔서는 살인청부에 대해 신이 죄를 드러내 벌하리라 언급하고 있다. 뒤집어 읽어보면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 중동에도 돈을 받고 살인을 하는 범죄가 만연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물론 이런 범죄자들이 중동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 국가를 이룬 곳이라면 어디든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살인청부업자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심지어 2천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살인청부업자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사적인 원한, 이권 다툼, 정치적 이유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인청부업자를 ‘이용’해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다른 사람을 제거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는 범죄인 살인청부업자는 1930년대 ‘기업화’까지 시도했다. ‘살인주식회사’의 설립이다. ‘살인주식회사’는 말 그대로 외부의 의뢰를 받아 전문적인 살인을 수행하는 살인청부조직이었다. 미국에서 마피아 세력이 성장하며, 주요 마피아 세력은 자신들 대신 전문적인 살인을 수행할 행동대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살인주식회사’가 탄생했다.
‘살인주식회사’라는 명칭 자체는 후에 조직의 정체가 폭로되며 언론이 붙인 별명이었지만, 이들은 그 별명 그대로 기업 체제로 청부살인조직을 운영했다. 단순한 살인자 몇 명이 모여 있는 오합지졸 집단이 아니었다. 직접 살인을 수행하는 히트맨(hitman), 현장까지 ‘수송’을 담당하는 휠 맨(wheel man), 목표의 정보를 수집하는 핑거맨(fingerman), 증거인멸반까지 갖추고 있는 고도로 분업화된 조직이었다.

회사를 구성하는 조직원들에게는 매달 ‘월급’이 지급되었고, 임무에 성공하면 추가 수당까지 나왔다. 만약 조직원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면 우수한 변호사를 붙이거나 경찰에게 뇌물을 먹여 풀려나게 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벌어졌던 마피아 전쟁에서 승리한 마피아 조직 연합의 지령을 받아 배신자나 거슬리는 사람을 전문적으로 ‘처리’했다.
살인주식회사의 청부살인은 총과 자동차를 동원해 말 그대로 ‘히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대상자를 납치해 살해하고 영원히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경우도 흔했다. 뭔가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면 총을 동원해 요란하게 살해하고, 은밀하게 처리해야 한다면 납치해 조용히 살해해 암매장하는 등 살인 의뢰에 따라 살인방법을 달리 할 정도로 고도화된 조직이었다.
1930년대부터 40년대까지 살인주식회사는 최소 400명, 최대 1000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총기나 흉기를 사용해 요란하게 살인을 했지만 범인이 밝혀지지 않다 후에 ‘살인주식회사’ 조직이 발각된 후 이들의 범행으로 밝혀진 경우도 있고, 당사자들이 입을 다물어 영영 행방을 알지 못하게 된 경우도 허다하다.

살인주식회사의 범행 대상은 일반인부터 마피아 두목까지 다양했다. 금주법 시대의 악명 높은 갱단 두목이었던 더치 슐츠(Dutch Schultz)는 1930년대 초반 뉴욕주 지방 검사 토머스 듀이(Thomas Dewey)에게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듀이 검사가 자신을 압박해 오자 더치 슐츠는 마피아 회의에 출석해 듀이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나머지 마피아들은 슐츠의 의견에 반대했다.
아무리 막 나가는 마피아라고 해도, 검사나 판사 등 공권력에 도전하면 끝이 좋지 않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탈세 문제로 궁지에 몰려 있던 더치 슐츠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고, 그렇다면 자신이 듀이 검사를 죽여버리겠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더치 슐츠가 실제로 듀이 검사의 집을 염탐하도록 부하에게 지시하는 등 사고를 칠 기미가 보이자 위원회는 슐츠의 암살을 살인주식회사에 명령했다.
1935년 10월 23일,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던 더치 슐츠를 살인주식회사 조직원들이 급습해 총격을 가했다. 더치 슐츠와 부하들은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곧 총격 후유증으로 슐츠를 포함한 4명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다가 ‘살인주식회사’ 조직이 발각된 1941년에야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더치 슐츠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며 악명을 떨치던 살인주식회사는 1940년 조직원의 배신으로 세상에 그 실체가 드러났다. 많은 조직원이 체포되어 처형되거나 감옥에서 오랜 세월 썩어야 했지만, 벤자민 ‘벅시’ 시겔 같은 주요 인물들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인주식회사의 주요 멤버였던 벅시 시겔은 후에 라스베가스 개발 문제를 놓고 분쟁을 빚다 자택에서 누군가에게 총으로 살해당했다. 시겔을 죽인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우리 곁의 살인청부업자
대놓고 조직화하여 살인을 수행하던 ‘살인주식회사’는 특별한 경우였다. 1940년 이후 ‘살인주식회사’ 조직이 발각되고,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미국 마피아 조직이 약화되자 그와 같은 조직화된 살인청부업자 조직은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이 개인을 고용해 살인을 청부하는 범죄는 국가를 불문하고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선진국에서 겉으로 드러난 살인청부 사건은 매우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모든 살인 사건의 5%가 청부 살인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비슷한 기간인 1989년부터 2002년까지 호주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분석한 호주 범죄 연구소는 살인사건이 전체 살인 사건의 2% 정도를 차지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뒤집어 말하면 명백히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을 죽인 살인청부 사건이 소수지만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남미 등지에서는 수백명을 살해한 살인청부업자가 짧은 수감 생활을 마치고 거리를 버젓이 활보하기도 한다.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부하였던 ‘뽀빠이’ 존 하이로 벨라스케스는 일반인부터 적대 조직원, 정치인, 언론인까지 알려진 것만 300명 이상을 납치 및 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23년만 복역하고 가석방되었다.
벨라스케스는 가석방 이후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청부살해 정황을 태연하게 증언하거나, 심지어 카르텔 당시 저질렀던 범죄를 상세히 이야기하는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하며 활동했다. 에스코바르는 죽었지만 자신은 여전히 그를 존경한다는 발언을 다큐멘터리에서 해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그가 직접 과거에 저질렀던 범죄를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에는 120만명 이상의 구독자가 몰려들었다.
살인 피해자들의 유가족은 벨라스케스가 범죄를 저지른 과거를 가지고 돈벌이를 한다고 분개했지만, 벨라스케스는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를 세상에 공개해 다른 젊은이들이 범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 변명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2018년 5월 협박 혐의로 다시 체포되었고, 수감 생활을 하다 지난 2월 암으로 사망했다.

살인청부업자로서 수백명을 죽이고도 다시 사회에 나와서 버젓이 활동하는 벨라스케스의 사례는 어이없어 보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남미 각국에서 벨라스케스처럼 잡혀서 감옥에 가기라도 하는 살인청부업자가 오히려 드물다는 것이다. 철없는 청소년을 마약이나 돈으로 고용해 대놓고 쏴 죽이는 경우에도 범인이 잘 잡히지 않는데, 전문적인 살인청부업자가 체포될 리 만무하다.
지역을 지배하는 마약 카르텔이나 범죄조직에 고용되어 잔인한 살인을 벌이고도 잡히기는 고사하고, 경찰이 용의자조차 지목하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 브라질의 슬럼가로 유명한 파벨라는 경찰조차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청부살인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파벨라를 지배하고 있는 범죄조직과 청부살인업자 스스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살인청부,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우리나라에서 살인사건의 검거율은 매우 높다. 경찰청이 내놓은 ‘경찰청범죄통계’에 따르면 2018년 벌어진 살인사건은 총 309건이었는데, 이 중 96.4%에 해당하는 298건의 범인을 검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심하면 청부살인 사건이 언론을 타며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 청부살인을 저지르는 계층도 평범한 중학교 교사부터 재벌집 사모님까지 다양하다.
2002년 벌어진 여대생 살인사건은 대기업 회장 부인이 청부살인, 그것도 사위의 이종사촌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부인의 조카와 조카의 친구로 구성된 2인조 실행범들은 1억 7천만원을 약속 받고 사위의 이종사촌을 납치해 공기총으로 살해했다. 이들은 살인직후 해외로 도주했지만, 피해자 가족의 호소로 경찰수사가 시작되자 중국에서 체포당해 압송되었다.
이들의 자백으로 대기업 회장 부인이 망상 때문에 사위의 이종사촌을 청부살인 했다는 끔찍한 진실이 밝혀졌다. 실행범과 살인을 청부한 대기업 회장 부인 모두에게 무기징역이 내려졌다. 이후 수감중인 부인이 의사와 짜고 허위 진단서를 이용해 형집행정지를 악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엄청난 파문이 일기도 했다.

2014년 3월, 서울에서 사업가가 둔기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체포된 범인은 사업가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는데, 경찰의 추궁에 친구인 (당시) 서울시 의원의 의뢰를 받아 청부살인을 했다고 자백했다. 현직 정치인이 이권 관계로 사업가에게 뇌물을 받았다가 상대가 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자 청부살인을 의뢰한 사건이었다. 2015년 살인사건의 실행범은 징역20년, 살인을 교사한 정치인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2015년에는 모 언론사에 심부름센터를 이용하면 총 4천만원에 청부살인까지 가능하다는 르포기사가 올라와 충격을 주었다. 살인청부 의뢰인으로 위장한 기자에게 심부름업체가 피해자를 동남아시아로 끌고 나가 처리하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다고 장담하며, 죄를 뒤집어 씌워 감옥에 보내 버리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최근에도 매년 한 두 건씩 청부살인 혹은 청부살인 미수가 벌어지고 있다. 2019년 1월에는 중학교 교사가 심부름센터 업자에게 6천만원을 보내며 자신의 어머니를 청부살인 하려다 남편의 신고로 미수에 그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교사는 재판과정에서 내연남과의 관계를 위해 어머니를 살해하려 한 것으로 밝혀졌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동남아 등지에 체류중인 한국인이 사업상의 문제 등으로 파트너를 청부살인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2019년 12월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강도살인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한국인은 강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사업파트너 지시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의 아내가 현장에서 숨졌고, 피해자와 딸은 중상을 입었다.
살인청부를 둘러싼 황당한 일도 벌어진다. 2016년 중국에서는 라이벌을 제거해 달라는 기업인의 청부살인 의뢰를 받은 청부업자가, 다시 다른 청부업자를 고용하고, 이 청부업자가 다른 청부업자에게 청부살인을 하청하는 방식으로 청부살인을 하려다 가장 하도급 살인청부업자가 피해자에게 둘이 짜고 그냥 죽은 걸로 치자고 제안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 미수에 그친 일도 있었다. 관련자는 징역 3~5년의 실형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장난으로 살인청부 의뢰사이트를 만들었다가 진짜 살인청부 의뢰를 받자, ‘타겟’을 찾아가 자신이 살인청부업자인데 돈을 내면 의뢰자에게 죽은 걸로 보고해 주겠다며 사기를 치다 체포되는 사건도 있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살인청부 가능하다는 광고의 실체를 알 만한 사건들이다.
지금 이 순간도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일반적인 업체에서는 할 수 없는 매우 은밀한 일’을 해주겠다는 심부름업체의 광고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대놓고 살인청부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모든 고민을 영원히 해결할 수 있다” 등의 말이 무엇을 암시하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은 돈만 받아먹는 사기꾼이지만, 그 중에는 여전히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살인청부업자가 숨어있을 수 있다.
청부살인은 현실이지만, 게임 속 멋있는 살인청부업자는 없다
살인청부는 지금도 흔하게 벌어지지만 게임 ‘히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코드네임 47’이나, 만화 ‘고르고13’ 시리즈에 등장하는 듀크 토고처럼 냉철한 살인청부업자는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 그보다는 푼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조선족이나, 돈에 굶주린 무직자, 기껏해야 조직범죄자 똘마니, 돈만 받고 먹튀 하려는 사기꾼이 현실이다.
1930년대 북미에서 운영되었던 ‘살인주식회사’는 겉으로는 번듯해 보였지만 결국은 단 한 명의 내부고발로 조직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인주식회사’의 핵심 멤버였던 ‘벅시’ 시걸은 돈 문제에 얽혀 다른 마피아의 청부로 추정되는 살인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나머지 주요 조직원도 살인 혐의로 오랜 감방 생활을 해야 했다.

물론 청부살인 자체는 인류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던 적이 없는 오랜 범죄인 만큼,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어슬렁거리고 있는 살인청부업자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단지 그게 ‘코드네임 47’이나 ‘듀크 토고’ 같은 멋있어 보이는 암살자는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 길복순 -
실제로 전문 살인청부업 기업이 있었다니 ㄷㄷ 요즘 시대 저런 기업이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지만
있더라도 저희 같은 일반인들은 모르겠죠?? ㅋㅋ 엄청난 거물급 사람이 아닌이상??
- 존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