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하던 어느 날의 소나랜드.
초록 빛 평원에는 포켓몬들이 정답게 하하호호 뛰어 놀고 있고,
어둡고 축축한 지하에는 묵묵히 광석을 캐는 사과몽이 있다.
사과몽은 꿈이 있다.

'반드시 광석 캐는 업적을 제일 먼저 달성하여 저 마을 광장에 내 동상을 세우리라.'
그녀는 광석을 캐고,
캐고,
또 캔다.

곡괭이는 날로 무뎌지고, 손 또한 굳은 살로 뒤덮여간다.

하지만 서버의 버그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연유로, 광석을 아무리 캐고 또 캐어도 업적은 등록되지 않는다.
얼마나 석탄을 캐어야 업적이 등록되는지 모르는 상황에, 수천 번을 캐어도 업적창은 묵묵부답이다.
사과몽은 드러눕는다.
마을 광장에 석탄 블록으로 탑을 쌓아버리겠노라 협박도 해본다.
운영자에게 떼도 써보지만 묵묵부답이다.
한 번 낚시에 성공해서 애써 무시하던 운영자를 꾀어내기도 했지만, 업적 관련해서는 여전히 답변이 없다.
결국 광석을 캐던 그녀는 지친 몸을 이끌고, 텅 빈 업적과 함께 광석을 비우러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던 길에 그녀는 뒷집 소녀와 마주친다.
소녀의 이름은 백청미, 눈엣가시같은 이웃이다.

서버 초기, 사과몽이 집을 처음 짓고 잠깐 비운 사이, 뜬금없이 주위에 무수한 이웃집이 들어섰는데,
덕분에 사과몽은 더이상 본인의 집을 증축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 집들 중 하나가 바로 뒤편에 있는 백청미의 자그마한 집이다.
한때 사과몽은 같이 살자고 들러붙는 백청미를 쳐내기도 했었다.
길고양이가 찾아와 키우라고 한들, 아무리 귀엽다고 한들, 모두를 키워낼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사과몽에게는 꿈이 있었다. '마을 광장에 내 동상을 세우리라'
경쟁자가 이미 석탄을 본인보다 2-3배 많이 캤다는 소식을 들은 사과몽은 일분일초도 낭비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백청미는 귀엽다.

너무나도 귀엽다.
그저께,

사과몽은 농장을 만드려고 무작정 2층으로 건물을 올려버렸고,
뒷편의 백청미의 집은 어둠에 휩싸여버렸더랬다.
마음이 캥겨 작은 뒷집 앞에 계단을 깔아주긴 했지만,
고작 그 계단이 뒷집의 잃어버린 아침 햇살을 되찾아주지는 못했다.
심지어 백청미가 벽 뷰보다는 내부 뷰가 낫다며
몰래 벽에 하나 뚫어 놓은 그 구멍마저도 사과몽은 막아버렸더랬다.

이런 집이라도, 그래, 이웃집이라 떡 돌린다며 호박 파이를 선물해주는 백청미에
사과몽은 왠지 장난기가 샘솟는다.
흙덩이를 시루떡이라고 놀려보기도 하고,
매번 빙빙 돌아가지 말고 본인 집으로 나다니게 해준다며 집에 가둬보기도 하고,
빈 화분을 건차(건물차단 아이템)라고 속여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과몽의 짖궂은 장난에도 그만 놀리라며 배시시 웃기만 하는 백청미.

맑디 맑은 백청미를 지켜보던 사과몽.
마음 속에 숨어있던 무언가가 샘솟은 탓일까?

꽁꽁 숨겨둔 지하 비트밭도 쓸 수 있게 해주고,
즐겁게 놀아주기도 하고,

심지어 현관문 열쇠까지 줘버린다.
한편, 사기를 많이 당했던 백청미.
밖에서 들리는 사기꾼 목소리에 벌벌 떨며 집에 숨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새 소리를 듣고 사과몽 집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사기꾼.
사기꾼은 입을 계속 털지만, 백청미는 왜인지 이번만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과몽이 옆에 있어 용기를 얻은 것일까,
백청미는 사기꾼을 끝끝내 문 밖으로 쫓아내버린다.
사과몽은 백청미가 대견하다.

사과몽은 농사 짓는 법도 알려주고,

작물을 호시탐탐 노리는 까마귀도 내쫓아준다.

생일 파티도 열어준다.

잠시 어딘가 다녀온 사이에 남몰래 자신의 집과 복도를 잇고 있는 백청미를 발견한 사과몽.
평소 같았으면, 뭐하는 짓이냐며 화를 벌컥 낼 일일런지 모르지만, 사과몽은 이번만은 그저 묵묵히 지켜본다.

해 지기 전, 사과몽은 백청미를 낚시터로 데려가 물고기 낚는 법을 알려준다.
미끼를 낚시대에 손수 끼워주는 사과몽.
역시나 젊은 나이인 백청미는 금세 물고기를 낚아올린다.
어느샌가 미끼는 바닥을 드러냈고, 사과몽은 왜인지 백청미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노래를 해준다면, 미끼를 더 주겠노라 약속하는 사과몽.
백청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준다.
날이 어둑어둑하다.
이제는 면접을 보러가야 한다는 백청미.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운지, 그녀는 고맙다며, 보답으로 소중하게 품어왔던 이로치 포켓몬을 내어놓는다.
이에 사과몽 또한 치코리타를 선물로 건네며, 둘은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한다.
그녀는 21살, 나는 31살.
물가에 내놓은 아기 새를 지켜보는 어미 새마냥,
사과몽은 멀리서 플라즈마단에 면접 보러간 백청미를 아련하게 바라본다.

삶은 무엇이 중요한 걸까?

'뭣이 중헌디'

오늘도 사과몽은 묵묵히 석탄을 캔다.
# 본작은 작성자의 각색이 살짝 들어갔으며, 작중 심리 묘사는 실제 인물과 관련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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