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로 인기!
용건만 간단히, 움짤은 한 번 더 생각
금병영에 상의하세요
야생의 이벤트가 열렸다
즐겨찾기
최근방문
반희수
23.06.26
·
조회 5560

 

 

우리는 개천쪽으로 문이 난 납작한 집들이 개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선 누구나 그렇듯 그 애와 나도 가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번번히 월급이 밀리는 시원찮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한쪽 안구에 개 눈을 박아넣고 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내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개구리 인형에 눈을 박았다. 그 애의 어머니는 청계천 골목에서 커피도 팔고 박카스도 팔고 이따금 곱창집 뒷 방에서 몸도 팔았다. 우리집은 네 가족이 방 두개짜리 전세금에 쩔쩔맸고, 그 애는 화장실 옆 천막을 치고 아궁이를 걸어 간이부엌을 만든 하코방에서 살았다. 나는 어린이날 탕수육을 못 먹고 짜장면만 먹는다고 울었고, 그 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밤이면 아버지의 허리띠를 피해서 맨발로 포도를 다다다닥 달렸다. 말하자면 그렇다. 우리집은 가난했고, 그 애는 불행했다.

 

 

가난한 동네는 국민학교도 작았다. 우리는 4학년때 처음 한 반이 되었다. 우연히 그 애 집을 지나가다가 길가로 훤히 드러나는 아궁이에다 라면을 끓이는 그 애를 보았다. 그 애가 입은 늘어난 러닝셔츠엔 김치국물이 묻어있었고 얼굴엔 김치국물 같은 핏자국이 말라 붙어있었다. 눈싸움인지 서로를 노려보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니네부엌 뽑기만들기에 최고다. 나는 집에서 국자와 설탕을 훔쳐왔고, 국자바닥을 까맣게 태우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사정이 좀 풀려서 우리집은 서울 반대편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친척이 소개시켜준 회사에 나갔다. 월급은 밀리지 않았고 어머니는 부업을 그만두었다. 나는 가끔 그 애에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에는 일년동안 쓴 딱딱한 커버의 일기장을 그 애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 애는 얇은 공책을 하나 보냈다. 일기는 몇 장 되지 않았다. 3월 4일 개학했다. 선생님한테 맞았다. 6월 1일 딸기를 먹었다. 9월 3일 누나가 아파서 아버지가 화냈다. 11월 4일 생일이다. 그 애는 딸기를 먹으면 일기를 썼다. 딸기를 먹는 것이 일기를 쓸 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애 아버지는 그 애 누나가 보는 앞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나는 그 얘기를 풍문으로 들었다. 그 애는 이따금 캄캄한 밤이면 아무 연립주택이나 문 열린 옥상에 올라가 스티로플에 키우는 고추며 토마토를 따버린다고 편지에 썼다. 이제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나는 새로 들어간 미술부며 롯데리아에서 처음 한 미팅 따위에 대해 썼다. 한번 보자, 만날 얘기했지만 한번도 서로 전화는 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 애의 편지가 그쳤고, 나는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고3 생일에 전화가 왔다. 우리는 피맛골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생일선물이라며 신라면 한 박스를 어깨에 메고 온 그 애는 왼쪽다리를 절뚝거렸다. 오토바이 사고라고 했다. 라면은 구멍가게 앞에서 쌓인 것을 그냥 들고날랐다고 했다. 강변역 앞에서 삐끼한다고 했다. 놀러오면 서비스 기차게 해줄께. 얼큰하게 취해서 그 애가 말했다. 아냐. 오지마. 우울한 일이 있으면 나는 그 애가 준 신라면을 하나씩 끓여먹었다. 파도 계란도 안 넣고. 뻘겋게 취한 그 애의 얼굴같은 라면국물을.

 

 

나는 미대를 졸업했고 회사원이 되었다. 어느날 그 애가 미니홈피로 찾아왔다. 공익으로 지하철에서 자살한 사람의 갈린 살점을 대야에 쓸어담으면서 2년을 보냈다고 했다. 강원도 어디 도살장에서 소를 잡으면서 또 2년을 보냈다고 했다. 하루에 몇백마리 소머리에 징을 내리치면서, 하루종일 탁주와 핏물에 젖어서. 어느날 은행에 갔더니 모두 날 피하더라고. 옷은 갈아입었어도 피냄새가 베인 거지. 그날 밤 작업장에 앉아있는데 소머리들이 모두 내 얼굴로 보이데.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 애는 술집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나직하게, 나는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는 걸까.

 

 

그 애가 다단계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만나지 마. 국민학교때 친구 하나가 전화를 해 주었다. 그 애 연락을 받고, 나는 옥장판이나 정수기라면 하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직하고 집에 내놓은 것도 없으니 이 참에 생색도 내고. 그 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면 가끔 만나서 술을 마셨다. 추운 겨울엔 오뎅탕에 정종. 마음이 따뜻해졌다.

 

 

부천의 어느 물류창고에 직장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등학교때 정신을 놓아버린 그 애의 누나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홀아비에게 재취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애가 둘인데 다 착한가 봐. 손찌검도 안하는 거 같고. 월급은 적어. 그래도 월급 나오면 감자탕 사 줄게.

 

 

 

그 애는 물류창고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다. 27살이었다.

 

 

 

그 애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였다. 한번도 말한 적 없었지만 이따금 나는 우리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손도 잡은 적 없지만 그 애의 작고 마른 몸을 안고 매일 잠이 드는 상상도 했다. 언젠가. 난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을까. 그 말 뒤에 그 애는 조용히 그러니까 난 소중한 건 아주 귀하게 여길 거야. 나한테 그런게 별로 없으니까. 말했었다. 그러나 내 사랑은 계산이 빠르고 겁이 많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애가 좋았지만 그 애의 불행이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도 있었다. 가난하더라도 불행하지는 않게.

 

 

출처 : 작자미상

댓글
침낙수나문
23.06.27
와 이거 진짜 오랜만이다
ABCJ
23.06.27
출처 어디간겨
주펄의은밀한모공
23.06.27
진짜 오랜만에 다시 본 글이네요. 이 당시에 글이 너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었죠
리머니
23.06.27
이 글은 볼때마다 진짜 문학에 필적하는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잔디
23.06.27
눈물
오이당근새
23.06.27
일기장을 선물하는 귀여움 미소년을 떠올렸는데 여자였구나 ㅋ
초고교급이하민
23.06.27
이 글 엄청 오랜만인데 볼때마다 감상하게 되네요
침애나
23.06.27
아.. 좋은 글입니다 마음이 아려요
하깨팔이
23.06.27
와..
토계피
23.07.07
개딱지가 아니라 게딱지인데..

전체 인기글 전체글

소스 12
침착맨
맹대곤영감
·
조회수 5773
·
23.06.27
방금 장기하님 21
침착맨
노랑통닭
·
조회수 10525
·
23.06.27
현재글 그 애. 11
유머
반희수
·
조회수 5560
·
23.06.26
키우던 강아지를 5만원에 팔았던 헐리웃 스타 14
유머
차도르자브종수
·
조회수 6930
·
23.06.27
[속보] 개방장, ‘속궁합’ 발언으로 더블킬 23
침착맨
지원호씨
·
조회수 12886
·
23.06.27
하와이 출장와서 한일 19
취미
BAB0
·
조회수 6066
·
23.06.26
멸치에 배만 나왔던 내가 3대 335라니? 37
취미
침상중하
·
조회수 7416
·
23.06.27
방장의 용달블루에 영감을 받아 65
침착맨
chimhahanet
·
조회수 8459
·
23.06.26
작은누나가 저한테 침착맨 추천할때 무슨 말 했는지 알아요? 21
침착맨
디카페인
·
조회수 9374
·
23.06.27
최고민수) 어제 소포 후기+럭셔리 여행 후보지20 64
취미
최고민수
·
조회수 8422
·
23.06.27
뉴진스 ASAP 티저 실루엣 추측하는 버니즈 15
침착맨
헤임달
·
조회수 8048
·
23.06.27
오늘 장기하, 카더가든 님 초대석은 오후 2시에 시작합니다 87
침착맨
침착맨
·
조회수 13977
·
23.06.27
자는 동안 암살당할까봐 조조가 생각해낸 해결책 25
유머
바이코딘
·
조회수 6966
·
23.06.27
이세돌이 신의 한 수를 두었을 때 알파고 개발자들의 반응 18
유머
간하하
·
조회수 6863
·
23.06.27
고대 한반도에도 '침'은 존재했다. 12
유머
참칭맨
·
조회수 5929
·
23.06.26
홍대에 있는 양카페 31
유머
차도르자브종수
·
조회수 8080
·
23.06.27
약혐) 팔 부러졌는데 여유 오지는 10살 쿨가이 48
유머
바이코딘
·
조회수 9176
·
23.06.27
우리집 먹보 보고가세유 15
취미
말랑둥
·
조회수 3559
·
23.06.27
기안을 웃게만드는 인도식 유머 15
유머
시인백석
·
조회수 7957
·
23.06.27
NewJeans (뉴진스) 'ASAP' Teaser 49
취미
이지금은동
·
조회수 7627
·
23.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