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 족 (māori)
호전적이며 두려움을 모르고
구릿빛 피부에 단단한 근육, 섬뜩한 전신 문신과 치켜뜬 눈. 그리고 적을 잡아먹을 듯 내민 혀기 인상적인 부족.
지금부터 마오리족에 대한 간략한 소개 + 엄청난 전투민족인 마오리에 대한 설명을 하겠음
마오리 족은 스스로를 마오리 족이라고 부르지 않음.
얘들 언어로 <마오리>는 '일반적인' 이라는 형용사로 다른 부족들이 얘들을 일반적인 부족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말임.
자신들 스스로는 탕아타 훼누아(Tangata whenua). 즉 <땅의 종족>이라고 스스로를 일컫는다고 함
원래 마오리족은 하와이키 라는 섬에 살고 있었는데
워낙 좁은 땅에 여러 종족들이 뒤엉켜 살다 보니, 땅도 좁고, 식량도 떨어지고,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혼돈의 카오스였음.
결국 10세기 경, 쿠페(Kupe)라는 대족장이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배를 타고 새로운 땅을 찾으러 나서게 됌.
한 수십일 간 항해를 하다가 어느 날 쿠페의 마누라가 <이상할 정도로 긴 흰구름>을 발견했다고 남편에게 말함
이에 쿠페가 전사들을 이끌고 배타고 가 보니 거기가 바로 지금의 뉴질랜드
마오리어로 뉴질랜드를 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 하는데, '긴(roa) 흰구름(aotea)'이라는 쿠페 마누라의 말에서 비롯된 이름임.
ㄴ 최초로 뉴질랜드에 정착한 쿠페 대족장의 얼굴
아무튼 새로운 신천지(新天地)를 발견한 마오리족은 쿠페를 따라 여기서 정착하게 되었는데
당시 뉴질랜드는 무인도.
즉, 최초로 뉴질랜드에서 살게 된 종족이 바로 이 마오리족임.
마오리족은 돼지를 키우고 고구마를 키우며 살았는데, 당시 뉴질랜드에 깔리고 깔린 대형 조류 모아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음.
그 결과 16세기 경, 모아는 마오리에 의해 멸종당하게 됌ㅋ.
ㄴ 마오리가 잡아먹은 타조만한 새 모아
마오리족은 뉴질랜드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적응했는데
화산섬인 뉴질랜드의 지열을 이용한 요리법인 항이(hangi) - 뜨거운 땅 안에 재료를 넣고 뜨거운 자갈로 눌러 익혀먹는 조리법
그리고 자체 지열로 지붕을 낮게 지어서 1년 내내 따뜻하게 먹고 살았다고 함.
일단 마오리족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ㄴ 고래뼈 무기를 든 마오리 전사
보통 게임에서 기의 개념으로 나오는 마나(mana)가 바로 마오리 족의 문화에서 나온 용어라는 사실.
마오리 족은 모든 이들에게 마나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 마나는 마오리족의 엄격한 계급 사회를 유지하고 전사들의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됌.
마나를 얻는 방법은
1. 자기 아버지가 높은 사람(족장 / 상급 전사)인 경우 대대로 물려받았고
2. 부족 전체를 위해 큰 공을 세우거나
3. 자신이 죽인 적의 고기를 먹음으로 얻을 수 있다
라고 믿었음.
즉, 마오리에도 식인 풍습이 있었음
1643년에 네덜란드의 <아벨 타스만>이라는 탐험가가 이끄는 뱃사람들이 어쩌다가 뉴질랜드에 상륙했는데,
이때 마오리족이랑 시비가 붙어서 전투가 일어남.
당시 선원들은 불을 내뿜는 신의 무기(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본 마오리족들이
"우와, 저 새1끼들을 잡아먹으면 폭렙업 하겠군!"
하고 덤벼들어서 선원 수 명을 백인들이 보는 앞에서 질겅질겅 씹어 먹음.
이에 기겁한 탐험대는 그대로 튀었고, 당분간 뉴질랜드는 백인들의 침공 없는 평화로운 나날을 누리게 됌.
ㄴ 먹이를 노리는 마오리의 눈빛
아무튼 마나(mana) 는 마오리족의 상징같은 에너지였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제약을 가하는 기준이었음.
마나를 많이 보유한 전사만이 복잡한 문신을 몸에 새길 영광을 누렸고, 많은 노예와 첩들을 거느릴 수 있었음.
이러한 마나의 성소는 마오리족의 조상들이 묻힌 무덤. 즉, 티키(tiki)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장소임.
마오리족은 이러한 무덤들을 철저하게 요새화 시켜서 적들이 쉽게 침입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음.
무덤 뿐 아니라, 파(pa)라고 불리는 마오리족의 마을 역시, 앵간한 대군이 몰려와도 쉽게 농성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요새화를 자랑함
ㄴ 대략 이런 식으로 2중, 3중의 요새를 쳐 놓음
- 마오리족의 참호 -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19세기 중엽에, 영국인들하고 마오리족이 한바탕 심하게 싸운 적이 있었음.
<마오리 전쟁> 당시, 마오리족은 영국군의 머스켓 때문에 밀리는 상황이었는데
영국군들이 강력하게 요새화 되어 있는 마오리 전사들의 무덤을 마을로 착각하고 대포로 포격을 가해 초토화 시켜놓았음.
이에 마오리족들이 자신들의 마나가 훼손당했다고 머리끝까지 분노함.
결국 폭주한 마오리 전사들의 개돌에 영국군 200명이 하루만에 전멸당하고 살점을 뜯기면서 대패했다고 함.
그리고 이제 마오리족이 왜 전투 종족이라고 불리는 지 설명하겠음
마오리 족은 평상시에는 고구마를 씹고, 돼지를 몰며 살던 평화로운 민족이지만
한번 옆 부족하고 시비가 붙으면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부족 모든 전사들이 동원되어 처절하게 싸웠음
보통 싸움이 시작되면 한쪽 군세가 완전히 괴멸되기 직전까지 싸웠으며,
전쟁에 진 부족은 그날로 전부 노예로 끌려가고
살아남은 적 전사들과 족장들은 마나 흡수용으로 전부 잡아먹힘.
그래서 전쟁에 이긴 부족은 전쟁 1번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2배로 불리게 됌.
이런 식으로 어느 한 쪽이 전멸당해 흡수당하면
다른 제 3의 마오리 부족이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싸우고
또 한 쪽이 망하면 다른 부족들이 견제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쳇바퀴같은 전쟁 구조가 한동안 이루어짐.
결국 마오리의 여러 족장들이 모여서
"이렇게 맨날 처 싸우다간 우리 마오리 전체가 전멸당하겠다. 앞으로는 싸우지 말자."
"ㅇㅇ 동감. 근데 안 싸우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함?"
그래서 결정 된 전쟁의 방식이 바로, 마오리 족의 전통 춤인 하카(haka)
전투를 벌이기 전에 두 부족은 모든 전사들을 이끌고 평지에 집결해 일정한 대오를 갖춤.
"야이 야1발놈들아! 니들이 그렇게 싸움을 잘해?"
이렇게 서로를 모욕하면서 부족 전체가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면서 전쟁을 하는 것임.
하카의 동작은 손으로 무릎을 치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빼밀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동작 등으로 이루어짐.
양 쪽의 하카 퍼포먼스가 끝나면 양 쪽의 추장들이 어느 쪽이 더 맹렬하고 용맹하게 춤을 추었는지 판단하고
졌다고 생각되면 그냥 그대로 싸움없이 물러났음.
이긴 쪽은 하카에서 이기면 적의 마나를 빼았았다고 생각하고 만족하면서 퇴갤.
진 쪽은 마나를 빼앗겠지만 목숨은 건졌다고 안심하면서 퇴갤.
이런 식으로 비폭력적으로 싸우게 되었음.
하지만 하카를 췄음에도 양 종족의 울분이 풀리지 않는 경우
그대로 실전 전투로 돌입해서 예전처럼 맹렬하게 싸웠음.
1840년 마오리 부족장들이 영국의 중재하에 <와이탕이 조약>을 맺어 유혈 전쟁을 중단시키긴 했지만,
이 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마오리 족끼리 싸워서 죽은 전사들의 수는 대략 2만.
그야말로 좁은 섬 안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격렬한 전투를 벌이며 살아온 민족이 바로 마오리족임.
한번은 마오리족이
"야 야발 사냥감 부족한데 딴 섬으로 한번 레이드 달려볼까?"
"콜."
해서 영국 상선을 빌려타고 채텀 제도라는 섬나라로 쳐들어 간 적이 있었음.
그리고 거기에 살던 평화로운 채텀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잡아먹었고 그 섬에 살던 동물과 새들을 전멸시켜버림.
이때 채텀 원주민들은 모두 마나 흡수를 위해 잡아먹혀서 멸족당하고 그 역사가 끊겨버림.
이에 대한 대표 사례로 1835년에 채텀 제도에 살고 있는 모리오리족[24]에 대한 공격이 꼽힌다. 총과 곤봉과 도끼로 무장한 마오리족 500명이 11월 19일에 침입했고, 12월 5일에 마오리족 400명이 더 왔다. 이들은 모리오리족의 촌락을 돌아다니며 모리오리족을 자신들의 노예라고 선언하고 반대하는 이를 죽여버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모리오리족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대표자 회의를 열어 맞서서 싸우는 대신에 평화와 우정을 제안하며 물자를 나눠주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그 제안을 전달하기 전에 마오리족은 한꺼번에 공격해왔다. 며칠만에 수백명의 모리오리족이 살해되고 많은 시체를 먹었으며 남은 이들은 노예가 되었다. 그 노예들조차도 몇 년 동안 닥치는대로 죽여서 대부분이 사라졌다.[25] 그 결과 당시 1,700명에 달했던 모리오리족은 35년이 지난 1870년에는 100명만 남았다. [25] 제레미 다이아몬드 <총,균,쇠> 2016, 73~74p
( 나무위키 참고 ) 사실 모두 전멸했다고 보기에는 똑같이 노예가 되며 마오리족과 동화되었을거라 봅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A%A8%EB%A6%AC%EC%98%A4%EB%A6%AC%EC%9D%B8
현재에도 모리오리인은 700명~1000명 소수 존재하며 모리오리어라는 별도의 언어도 갖고있습니다
1840년 와이탕이 조약 이후, 마오리 족은 영국인들과 비교적 사이좋게 지내긴 했지만
결국 백인들의 영토 확장 정책과 충돌하면서 2차례의 마오리 전쟁이 일어나게 됌.
최후에는 영국인들의 화력 앞에 무너지긴 했지만
마오리족은 특유의 요새화 된 마을과 용맹한 마오리 전사(버서커)들의 힘으로 처절하게 항전하는 모습을 보여 영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김
총포로 무장한 마오리족
그리고 영국은 이들을 <전투 종족>으로 인정하고 용병으로 고용하게 됌.
이것이 바로 1,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소속으로 용맹을 떨친 <마오리 대대>의 탄생임.
이들은 그 유명한 <구르카 용병>과 쌍벽을 이루는 전투력을 과시했음.
심지어 세계대전 중에도 독일군을 앞에 두고, 전사들이 일렬로 서서 하카를 추면서 도발하는 등, 상당한 기행으로 주목을 끌었음.
마오리 족은 특히 제1차 세계 대전때 저격수의 총알과 포탄이 난무하는 참호전 속에서도 하카를 추는 대범함과 특유의 호전적인 돌격을 앞세워 백병전에서 크게 활약함.
제2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해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노획한 독일제 무기를 애용했다고 한다 특히 병사들이 서로 엉키면서 완력으로 싸우는 좁은 참호전에서 그 빛을 발했음.
당시 이들을 상대해야 했던 군인들은 두려움 없이 돌격해 오는 마오리 대대의 전사들을 보고 한 독일군 병사가 “이 새끼들은 총을 맞아도 신음소리도 안 내고, 다른 놈들은 옆에서 동료가 쓰려지든 죽든 말든 칼 들고 돌격하고, 중기관총으로 갈겨도 무시하고 꾸역꾸역 들어와서 아군을 학살하고 아군 진지를 피범벅으로 만드는…" 미친 새끼들이다.” 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무자비했다고 하며 이들을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가 '만약 마오리족이 독일을 도왔다면 전쟁을 이겼을 것'이라고 한탄했다는 카더라가 존재할 정도다.

ㄴ 오늘날의 마오리 대대 부대원들.
오늘날 마오리족은 뉴질랜드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80년대 뉴질랜드 정부의 마오리어 부활, 보급 운동으로 조금씩 그 세력이 살아나는 중임.
하지만 관광 자원으로 살아가는 마오리 부족들을 제외하면, 가난과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마오리족이 더 많은 것도 씁슬한 현실.
ㄴ 마오리 특유의 인사법인 홍이(hongi). 코와 코를 비비며 하는 인사법이다.
하지만 백인들 앞에 무릎꿇고 명맥을 잃어버린 수많은 부족들과는 달리
특유의 호전적인 성격과 무지막지한 전투력으로 <전투 종족>의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은 마오리족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전사의 혼은 죽지 않는다" - 마오리 족
여담으로 6.25 전쟁때도 참전한 마오리족
총이 없다면 활과 창을 들어서라도 싸운다는 전투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