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걸프전이 발발하기 몇 주 전, 미국 CIA 요원 6명이 정보수집 활동 중 이라크 내에서 고립되어 버림.
CIA는 이라크 내 자국민을 소개 시키고 있던 영국하고 프랑스에게 자신네 요원들도 빼줄 것을 부탁했는데, 얘네는 자국인 구출도 바뻐서 쌩깜.
CIA는 우리 정보자산 다 날아가겠다!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동유럽의 폴란드에게 도움을 요청함.
당시 이라크에는 수천명의 폴란드인 노동자들이 파견되어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이라크와의 외교관계도 친했던 나라였음.
하지만 CIA에게 폴란드는 매우 믿기 힘든 나라였음. 불과 1년 전까지만해도 폴란드는 공산주의 국가였고, 소련의 따까리로 나토와 대립하던 적성국이었기 때문임.
하지만 1989년 공산권 붕괴 직후 어떻게든 미국하고 좋은관계를 맺고 싶었던 폴란드 정부는 자신들의 외교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부탁을 들어주기로 함.
폴란드 정부는 폴란드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국가 안보부(Urząd Ochrony Państwa, UOP)에게 이 작전을 위임함.
사실 UOP도 냉전기 동안 대서방 쪽 라인에만 역량을 쏟아부어서, 이라크 같은 중동쪽 첩보라인은 0에 수렴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이 지역에 대해 문외한이었음.
그래서 UOP는 자국과 이라크의 외교관계가 상당히 좋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함. 바그다드에서 폴란드인들은 다른 서방국가 출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했고, 국민정서도 적대적이지 않았음.
이걸 이용하여 CIA 요원들을 폴란드인 노동자라고 속여서 국외로 탈출 시킨다는 내용의 사뭄 작전(Operacja Samum)이 계획됨.
(* Samum - 아랍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래와 열기가 섞인 국지풍을 의미함)
한편, 미리 명령을 전달받은 CIA 요원들이 죽기살기로 도망쳐서 간신히 바그다드의 폴란드 노동자 숙소에 도착함.
바그다드에 파견된 UOP 요원들이 '우리가 당신들을 빼내주기 위해 파견된 공작조다'라고 말함.
역시 CIA 요원들은 처음에는 UOP 요원들을 매우 불신했다고 함. 왜냐하면 이 UOP 요원들은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과 나토를 상대로 공작활동을 벌였던 인간들이었음. 까놓고 이야기해서, 너네 빨갱이였는데 어떻게 믿냐는 거였음.
하지만 UOP 요원들은 살고 싶으면 자신들을 믿어야 한다면서 가짜 폴란드 여권을 주고 폴란드어 단기강좌를 시킴.
문제는 폴란드어 특유의 병크같은 발음 때문에 CIA 요원 6명 전원 자신의 가짜이름을 발음 못함.
전혀 예측하지 못한 포인트에서 트러블이 발생하자, UOP측은 CIA 요원들한테 그냥 검문 걸려도 아가리 닫고 있으라고 계획변경함.
다음 순서로 UOP 요원들은 폴란드인 노동자들중에서 치프 엔지니어 한명을 섭외함.
이 엔지니어 아재는 몇 주 전에 자신 밑의 노동자 400여명을 인솔하여 이라크-요르단 국경 너머로 탈출 시킨 적이 있었음. 딱 봐도 뭔가 좀 끼가 보이는 양반이라서 UOP 측은 그에게 CIA 요원들이 터키 국경을 넘게 해달라고 부탁함. 딱히 보상은 없었으나, 엔지니어 아재는 숙소 옥상에서 보드카 몇 잔 하더니 OK 콜~ 함.
한마디로 정부사업을 대책없이 민간 컨트랙터(자원봉사)에게 떠넘긴 거임.
CIA와 랭글리 본부에서는 UOP의 작전이 너무 허술하다고 여겨서 중단 요청을 했음. 하지만 UOP측은 이미 다 벌렸는데 무슨 취소냐 하면서 그냥 씹고 감행함.
다행히 바그다드를 출발하고 미친 음주운전차량하고 사고 날뻔 한 걸 빼면 별 문제 없이 잘 지나갔음.
그러다가 모술 근교 검문소에서 일이 터짐. 거기 당직서던 이라크군 장교가 폴란드 유학파 출신이었음.
(이라크는 60~80년대에 폴란드에 국비유학생을 수천명 보낸 적이 있음.)
그 이라크군 장교가 폴스키? 라는 말을 듣자마자 반가워서 CIA 요원 한명한테 유창한 폴란드어로 꾸르바꾸르바 해댐.
다행히도 치프 엔지니어 아재가 대신 인사 받아주고 같이 꾸르바꾸르바 장단 맞춰주며 노가리 까줌.
그러고 자연스럽게 '아, 여권 확인하신댔죠?' 라고 하니까 오랜만에 추억의 향수를 느낀 이라크군 장교는 기분 좋아져서 프리패스 시켜줌
간 떨어질뻔 한 폴란드 엔지니어 아재 CIA 요원들한테 다시 폴란드어 단기강좌 시도. 역시 전원 여권이름 발음 못함.
정확히는 이 새끼들 머가리는 똑똑하니 문법은 이해했는데, 그 미국인 특유의 악센트를 못 고침.
(당시 이라크인들은 국내에 체류하던 서양인들중 헐리우드 영화 악센트를 쓰는 사람을 미국인으로 찍어서 축출해냈음.)
치프엔지니어 아재 '이 새끼들 답이 없다'며 빡쳐서 조니워커 레드 4병 주고 '이거 쳐먹고 취해있으라'고 꼽줌.
(이슬람은 술을 금기시하니까 취해있으면 안걸들거라고 생각했나 봄.)
근데 CIA 애들 작전중엔 음주 안한다며 술 끝까지 안 마심. 어쨌든 가장 큰 위기는 넘겼고 거의 2달만에 북쪽 터키 국경에 다다름.
터키 쪽에서 폴란드 대사관 직원들이 마중 나와있던 상태였음.
엔지니어 아재가 CIA 요원들한테 돌발행동 하면 터키 국경경비대가 사격할 수도 있으니 그냥 천천히 걸어가서 입국수속 받으면 문제 없을거라고 조언함.
그리고 CIA 요원들 전부 말 안 듣고 전력질주로 국경돌파 시도. 엔지니어 아재 그거 보고 최후까지 남아있던 어이상실함.
다행히도 총격 같은 건 없었고, CIA요원들은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안전하게 미국으로 탈출했다고 함.
한편 바그다드에 남은 UOP 요원들은 나름대로 바그다드 주요기관시설 지도와 기타 여러가지 인텔을 수집하여 미국에게 넘김. 이 정보들은 이후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미군이 이라크를 공습할 때 요긴하게 쓰임.
UOP는 이 작전에서 쓰인 노하우를 이용해 나중에 바그다드에 억류된 15명의 다른 외국인들 역시 성공적으로 구조함.
이후 폴란드 정부는 미국에게 대가로 외채 165억달러에 대한 탕감을 요구했고, 다음해인 1991년 4월 파리클럽에서 바로 실행됐음.
미국은 또 나름대로 폴란드라는 나라가 신뢰할만 하다고 판단하였고, 현재도 군사-정보 분야에서 여러가지 도움을 주면서 긴밀한 교류를 하고 있음.
(현재 러시아가 눈을 부라리는걸 알면서도 폴란드가 나토가입, 패트리어트 기지를 유치하고 미국산 군장비를 도입하는 이유도 다 미국의 빽 덕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