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십니까. 인터넷 변방에서 취미로 생물 만화를 그리는 사람입니다. 나처럼 살지 마시오.
만화 내용 관련하여 한 가지 보충하겠습니다.
인간은 침팬지와 공통 조상을 두고 있어요. 침팬지가 진화하여 인간이 된 게 아니라, 아주 먼 과거 인간과 침팬지의 한 공통 조상이 각각의 환경에 맞게 어떤 무리는 인간으로, 어떤 무리는 침팬지로 진화한 것이죠. 그 조상은 고릴라와 또 공통된 조상을 가졌을 것이고, 꼬리가 없는 유인원과 꼬리가 있는 원숭이 사이의 공통 조상, 영장류와 설치류 사이의 공통 조상, 포유류들 사이의 공통 조상, 끝없이 뇌절하면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올라가다보면 한 지점에 모이게 될 거예요. 만화에서는 35억~40억 년 전 살던 단세포 원핵생물이 현생 모든 생물들의 공통 조상이라고 표현하였는데요, 이것이 최초의 생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보다 더 오래된 종이 있었는지, 이 생물과 경쟁한 또 다른 종이 있었는지,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아요. 다만 현재 과학에서는 우리가 이름 댈 수 있는 모든 생물(세균, 고세균, 진핵생물)들은 모두 한 곳에서 왔다는 것만큼은 압니다.
그 강력한 증거 중 하나는 DNA 염기서열 입니다. DNA, 염기, 이름은 복잡하지만 논리는 단순해요. DNA는 A, C, G, T, 총 네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를 ‘고양이’라는 뜻의 ‘CAT’으로도, ‘꼬리표’라는 의미의 ‘TAG’로도 조합할 수 있죠. 생물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A, C, G, T라는 네 가지 패턴에 따라서 인간이 되기도 하고, 소나무가 되기도 하고, 차짬에 올라가는 미더덕, 오징어, (가공 전) 차돌이 되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가 알아낸 모든 생물들의 유전자가 네 가지 패턴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 우리가 모두 같은 곳에서 왔다는 사실을 지지하는 것이죠.
생물은 DNA가 복사됩니다. (???: DNA가 복사가 된다고?) 인간의 DNA 염기 서열을 전공책으로 적어낸다면, 100권 분량 정도 될 거예요. 어떤 종이 다른 종을 낳을 수 없듯 DNA는 아주 놀랍도록 정밀하게 복사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DNA의 길이가 너무 길기 때문에 오타가 생기기도 합니다. 변이가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예요. 생물은 이렇게 무작위로 발생하고 환경에 적합한 이들이 살아남게 되어 그 형질을 다시 퍼뜨리게 됩니다. 이것이 아주 오랜 기간 이어져 지금 같은 생물 다양성이 생길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침착맨님이 얼마 전에 진화에 관한 글을 올리셨죠. 벌써 한 달도 넘은 글 같아서 언급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냥 할게요. 내 맴이니까. 언뜻 무작위로 발현하고 살아남은 이들만 진화를 한다는 게 불합리해 보여요. 혹여나 자연선택을 보며 공허함을 느낀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인간의 눈으로 보지마. 우주의 눈으로 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현상을 글로 적어낸 것이 만유인력 법칙이었던 것처럼, 자연선택은 그저 생명이 피고 지는 것을 기술한 것일 뿐입니다. ‘진화’라는 단어에 숭고함이 있거나, ‘도태’라는 단어에 저열함이 있거나 하지 않아요. 진화했다고 박수받을 것도, 도태됐다고 무시받을 것도 과학이 정해주지 않습니다. 세상을 기술하는 건 과학이지만, 해석하는 건 인간이니까요.
‘본다’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물체로부터 반사된 빛이 눈에 들어와 망막에 맺히고 시신경을 지나 뇌로 인식하는 것을 ‘본다’라고 합니다. 빛은 우리가 느낄 수 없을 만큼 빠르지만, 분명한 속도가 있어요. 그렇다면 만약 빛이 어떤 물체에 반사된 직후, 그 물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빛은 여전히 날아오고, 우리는 인식합니다. 우리의 눈과 뇌는 그 물체가 여전히 자리에 있다고 느끼는데, 알고보면 없을 수 있어요. 지금 눈 앞에 있는 침하하가 사실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나. 이 모든 세상이 가짜?
실제로는 빛보다 빠른 것은 없기 때문에 ‘지금 보고 있는 일상의 물건이 사실 그 자리에 없다’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양자의 세계는 아주 작은 세계이다 보니까, 빛에도 물질이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물질을 관측하는 데 있어서 그 물질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자역학 이후의 물리학은 확률로 이야기합니다. ‘본다’라는 아주 단순한 행위 조차 정확하지 않으니 이 세상에 100%라는 게 없는 것이죠.
양자의 움직임을 확률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또 DNA가 복사될 때 오류가 생기는 것을 보면, 이 우주라는 곳에는 완벽이란 게 더욱 부자연스러운 현상 같습니다. 그러니 완벽하지 않은 우리 같은 존재들이 어떤 식으로 태어나 어떤 식으로 살다 가든, 삶의 주체로서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침하하호호 웃어야할 곳에 진지한 글을 올린 것 같아 조금 죄송스럽습니다. 아무튼 비타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