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저는 생명과학 비전공자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틀린 설명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침착맨님 유튜브 영상을 제외한 모든 사진 출처는 하단에 남겨 놓겠습니다. :)
진화론에 의하면 모든 생물은 진화합니다. 침착맨님이 침숭이에서 존잘맨으로 진화한 것처럼 지금도 우리 모두가 진화를 겪고 있어요. 이는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진화는 발전이나 진보같이 특정 방향성을 띈 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는 조금 다릅니다.
전갈은 갑각류가 아니라 협각류입니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 거미죠. 실제로 거미와 함께 거미강에 속하는데요, 거미강 동물의 특징 중 하나는 다리가 네 쌍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갈의 집게는 사실 다리가 아닙니다. ㄴㅇㄱ
타란툴라 사진을 보면 얼굴 옆에 다리처럼 생긴 것이 있죠? 이는 다리가 아니라 더듬이 역할을 하는 촉지라고 합니다. 그런 촉지가 전갈에게는 불필요했기 때문에 집게의 형태로 발달한 것이죠.
전갈의 집게발처럼 진화하는 과정에서 특정 부위가 발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사용하지 않아 퇴화되는 부위도 있습니다. 네발나비의 앞다리쌍이 퇴화의 예시입니다. 원리는 단순해요. 전갈의 생존에는 집게발이 필요했고, 네발나비의 생존에는 앞다리가 별 쓸모 없었던 것이죠.
환경에서 살아남은 결과가 진화입니다. 진화와 퇴화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진화의 한 방식이 퇴화인 것입니다. 자세한 건 진화론 글(https://chimhaha.net/orbit/59789)을 참고해주세요. :)
퇴화한다고 해서 아예 사라지기 보다는 물리적인 한계나 여러 이유로 흔적을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흔적기관이라고 해요. 인간의 꼬리뼈(coccyx)는 대표적인 흔적기관이며, 이는 인류의 아주 먼 조상에게 꼬리가 있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차돌짬뽕에 적응한 철면수심님은 종종 매콤한 게임 플레이를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철면수심님의 멘사 자격증과 각종 게임 우승 경력을 통해, 철면수심님이 과거에 똑똑했다는 사실을 알죠. 이처럼 흔적기관은 진화 계통에 단서를 제공합니다.
꼬리가 퇴화된 영장목 동물은 인간만이 아닙니다. 꼬리가 없는 영장목 동물을 유인원이라고도 해요.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이 유인원에 해당합니다.
위의 뼈 사진은 순서대로 오랑우탄과 고릴라의 골반뼈입니다. 꼬리가 없는 오랑우탄과 고릴라에게도 꼬리뼈라는 흔적기관이 남아있죠. 인간의 것과 비슷해보입니다.
고래의 골반뼈(pelvis)는 흔적기관을 다룰 때 빠질 수 없는, 단골손님입니다. 고래는 아시다시피 포유강(포유류)입니다. 외모는 조기어강인 다랑어나 연골어강인 상어에 가까운데도 말입니다.
생물 종은 외관의 몇 가지 특징만으로 분류되지 않아요. 그랬다면 아이돌분들과 제가 같은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지 않았을 겁니다. 생물 종은 형태적 특징뿐 아니라 해부학적 특징, 생태적 특징, DNA 염기서열 등 엄밀한 기준들과 수많은 전문가들의 논쟁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고래의 해부학적 특징 중 하나는 골반뼈와 넓적다리뼈가 몸 속에 파묻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래의 조상이 육상생활을 했다는 증거 중 하나죠.
파키케투스는 다리가 네 개인 육상 생물입니다. 파키케투스는 하마의 조상과도 가깝습니다. 계통 분류에 따르면, 고래와 가장 가까운 현생 육상 동물이 하마인 것입니다. 하마의 뛰어난 수영 실력을 생각하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예요.
매너티는 수중 생활을 하지만, 아가미도 없고 담수(강물)를 주기적으로 마셔야하는 수생포유류입니다. 포유류인데 뒷다리 대신 지느러미가 있어요. 고래와 비슷한 사례입니다.
고래의 경우처럼 외관상으로는 다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몸 내부에서 골반뼈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매너티는 포유강 아프로테리아상목으로 분류돼요. 같은 아프로테리아상목에는 동물 일짱 코끼리가 있는데요, 유전적으로도 매너티와 가장 가까운 육상생물이 바로 코끼리입니다.
차례로 매너티와 코끼리의 뼈 사진입니다. 골반뼈 모양을 비교해보면 상당히 흥미로워요.
TMI)
다리가 퇴화된 것처럼 보이는 바다코끼리는 다리가 있습니다. 지느러미 형태로 진화했어요. 바다코끼리는 식육목에 속하며, 이름과 달리 코끼리보다 개에 더 가깝습니다. 바다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TMI 2)
바다코끼리의 발을 보니 인간의 손발과 비슷해보입니다. 이렇게 다른 형태로 진화했지만, 기원이 같아 공통점이 남아있는 기관을 상동기관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팔, 고양이의 다리, 박쥐의 날개, 고래의 지느러미, 외관은 다르게 생겼어도 뼈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흔적기관은 상동기관의 한 부분입니다.
새우, 게, 가재 등이 포함된 십각목은 이름처럼 가슴 부분에 다리가 다섯 쌍, 즉 열 개인 것이 특징입니다. 다리가 많은 새우도 가슴 부분에 자리한 걷는 다리(walking legs)가 다섯쌍이기 때문에 십각목 분류 기준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킹크랩이라고도 불리는 왕게는 사실 게가 아닙니다. 집게(소라게)와 가까워요. 집게와 게 사이에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다리 개수입니다. 게는 집게 다리를 포함하여 다리가 열개이고 왕게는 여덟개예요. 뭔가 이상하네요? 왕게도 십각목 동물이기 때문에 다리가 분명 다섯 쌍일텐데요.
눈치 빠른 침하하 유저분들이라면 이야기 흐름상 다리 한 쌍이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들은 싫다니까?)
비싸서 뺀 건 아니구요.
왕게의 다섯번째 다리 쌍은 몸 안에 있습니다. 마지막 다리가 몸 안에서 움직이며 아가미를 청소합니다. 또, 다섯 번째 다리가 몸 밖으로 나갈 때가 있는데, 생식활동을 거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세한 건 유튜브 수상한생선(https://youtu.be/Ntd8N4om9Wg)님 영상에 아주 잘 나와있습니다.
특정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퇴화된 것이 아니기에 흔적기관으로 보기 애매하지만, 본래 다리의 역할이 퇴색되었기 때문에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해 드렸습니다.
네발나비는 다리가 네개라 네발나비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상당히 직관적인 네이밍이네요. 거의 만두콘. 그런데 조금 이상해요. 어린 시절 모든 곤충의 다리는 여섯 개라고 배웠는데 말입니다.
네발나비의 앞다리 쌍은 퇴화된 채 접혀 가슴에 착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과거에 네발나비도 다리 여섯인 곤충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곤충민수 갈로아님 말에 따르면, 네발나비의 다리는 착지할 때만 쓰이기 때문에 앞다리는 불필요하여 퇴화되었다고 합니다. 제 뇌피셜을 더하자면, 네 발로 지지하고 상체를 조금 들어 더듬이로 경계하는 자세가 생존에 유리했던 것 같습니다.
뱀은 다리가 달린 도마뱀들과 공통된 조상을 갖습니다. 뱀의 조상에게도 다리가 있었던 것이죠. 사진은 융단비단뱀을 확대한 모습입니다. 다리 뼈가 흔적기관으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건 사진 출처인 유튜브 Odd Animal Specimens(https://youtu.be/4U-R2OehPJU)님 영상을 참고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뱀의 조상까지 설명히 굉장히 잘 되어있습니다. 수상한 생선님도 그렇고 요즘은 인터넷에 자료가 풍부해서 참 공부하기 좋은 것 같습니다.
뱀에게 다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충격적일수도 있는데요, 사실 파충류 내에서 다리가 퇴화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진의 동물은 뱀이 아닙니다. 무족도마뱀(Anguis fragilis)이며, 이름처럼 뱀보다는 도마뱀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꼬리를 자르는 행위, 자절을 하기도 합니다.
버튼민다리도마뱀도 뱀이 아닙니다. 계통 분류상 뱀보다 게코도마뱀에 더 가깝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얼굴 쪽에 작은 구멍이 있습니다. 이는 뱀에게 볼 수 없는 귓구멍입니다.
버튼민다리도마뱀에게도 뒷다리의 흔적이 존재합니다. 융단비단뱀의 것과 다르게 생겼다는 점은 버튼민다리도마뱀이 뱀보다 게코도마뱀에 가깝다는 의견에 힘을 실어줍니다. 뼈 사진을 구할 수 없어 3D 모델 링크로 대체하겠습니다. (https://sketchfab.com/3d-models/burtons-legless-lizard-skeleton-2a91cd25cdf24c448fd2febdb4ec0afd)
흔적기관은 식물에게도 발견됩니다. 사진은 소철의 정자예요. 세상 좋아졌네요, 침하하에서 나무 정자도 보고… 아무튼 소철은 암수딴그루 나무로,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존재합니다. 번식하기 위해서는 정자를 난자에 전달해야 합니다.
아주 먼 과거에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수생생활이 더 일반적이었을겁니다. 실제로 바다에서 최초의 생명과 그에 이어 동식물의 기원이 되는 진핵생물이 탄생했죠. 이에 관해서는 기회가 되면 더 깊게 다루겠습니다.
소철의 정자에 털 같은 것이 달려있습니다. 이를 편모라고 합니다. 편모성 정자는 운동성을 가집니다. 인간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직접 헤엄쳐 번식을 했던 것입니다.
반면, 지금의 소철은 수생식물이 아니죠. 현재 소철은 바람이나 곤충을 통해 정자를 날려 번식합니다. 편모가 사용되지 않는데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대표적인 식물의 흔적기관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주 원시적인 특징을 띄는 은행나무도 비슷한 형태의 흔적기관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뼈(주우재님 아님) 위주로 흔적기관을 살펴보았는데요, 여전히 다루지 못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인간만 하더라도 꼬리뼈 말고 다른 흔적기관들이 있죠. 사랑니, 동이근, 야콥슨 기관 등등등… 모두 다루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글을 쓰다보니 좀 귀찮아진 것도 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좋은 하루되세요. :)
사진 출처
- 전갈(https://www.sedaily.com/NewsView/22U1V9TW3X), 타란툴라(https://www.psychologicalscience.org/news/releases/that-giant-tarantula-is-terrifying-but-ill-touch-it-expressing-your-emotions-can-reduce-fear.html)
- 인간 꼬리뼈(https://medlineplus.gov/ency/imagepages/19464.htm)
- 오랑우탄 골반뼈(https://boneclones.com/product/orangutan-pelvis-assembly-KO-202-P), 고릴라 골반뼈(https://boneclones.com/product/gorilla-pelvis-assembly-KO-028-P)
- 고래 골반뼈(https://socratic.org/questions/what-are-whale-vestigial-pelvic-bones)
- 파키케투스(https://en.wikipedia.org/wiki/Pakicetus)
- 매너티(https://www.treehugger.com/things-you-didnt-know-about-manatees-4862930)
- 매너티 뼈(https://en.wikipedia.org/wiki/File:Manatee_skeleton_with_calf.jpg), 코끼리 뼈(https://en.upali.ch/anatomy-of-the-elephants/)
- 바다코끼리 뼈(https://mainichi.jp/english/articles/20211209/p2a/00m/0na/023000c)
- 새우(https://www.enchantedlearning.com/subjects/invertebrates/crustacean/Shrimp.shtml)
- 왕게(https://m.sspark.co.kr/product/detail.html?product_no=134)
- 왕게 다리(https://youtu.be/Ntd8N4om9Wg)
- 네발나비 (https://www.naturing.net/o/55503)
- 네발나비 확대(https://www.youtube.com/watch?v=ViT8kYtYArA)
- 융단비단뱀(https://youtu.be/4U-R2OehPJU)
- 무족도마뱀(https://www.inaturalist.org/observations/16314810)
- 버튼민다리도마뱀(https://www.inaturalist.org/observations/37841742)
- 소철(https://www.easybiologyclass.com/development-of-male-and-female-gametophyte-and-archegonia-in-cycas-short-not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