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아시안게임- 98 아시안게임부터 프로선수 출전이 가능해졌습니다. 근데 1998년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발 조건이 미필이었습니다.
당시 30세였던 양준혁 선수는 군필이었고 당연히 뽑힐 수 없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처음으로 IOC에서 프로선수 출전 허용해줬습니다. 하지만 양준혁 선수는 선수협 사태로 개막 후 3주 이상 지나서 트레이드된 LG에 합류했고 준비가 늦었으니 초반 페이스가 떨어져있었습니다. 시즌 후반에는 외야, 1루수로 나오며 3할에 90타점 이상으로 제 기량을 보여줬지만 예비엔트리 발표는 5월이었습니다. 5월의 양준혁은 타격감도 떨어져있고 선수협 문제도 있었기에 뽑지 않은 겁니다.
2002년 아시안게임- 그냥 못해서 못뽑혔습니다. 어깨 부상있었는데 수술하지않고 어깨에 찬 물을 빼는 시술만 하고 시즌 뛰었습니다. 결국 부진해서 못뽑혔습니다.
2003년 아시아 선수권 - 왜 안뽑혔는지 모르겠습니다… 외야수로 골글도 받았는데..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3등을 하면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참가 못하게 되었습니다.
2006 WBC- 06시즌 시작하기 전에 치뤄졌기에 05시즌 성적보고 선발했었는데 05시즌 부진했습니다. 나이도 38세였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인도 가고 싶다고 했던 올림픽이었고 06,07시즌 연속으로 골글받으면서 부활했으나 08년에 다시 부진하심. 결국 못뽑혔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 은퇴.
여담이지만 양준혁 선수는 1990년 아시안게임에서 야구가 시범종목이었을 때 영남대 소속으로 국가대표팀 뽑혀서 2위 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양준혁 위원의 비판 수위가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김현수 선수가 국대와 비국대를 나누는 듯한 저격 발언을 한 것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번 WBC는 마지막까지 개운치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