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썸네일용

아, 호민이 형!
합방하기로 한 시각이 언젠데 인제야 오면 어떡해?
벼... 병건아, 미안하다.
오늘따라 내가... 몸상태가 좀 그래서...
아, 됐어 됐어.
빨리 앉아서 방송할 준비나 해요.
병건아... 나...
또 뭐요?
그 나이 되도록 늘 율무차만 찾을 정도로 건강하던 양반이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앓는 소리를...
병...ㄱ
(털썩)
호민이 형?!
호민이형!!!!!!!!!!

...호민 형님은 좀 괜찮으시답니까?
괜찮아, 괜찮아.
요즘 의학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데
조금 있으면 금방 일어나겠죠 뭐.
흠...
표정이 왜 그래요, 궤도 님?
침착맨 님.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오신 거 아닙니까?
뭐라고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언어는 물론 그 나라만의 고유 밈까지
머릿속 칩을 통해 손쉽게 다운로드 하는 게 가능해진 지금...
이미 전 인류 140억 명 중 100억 명가량의 한국인화가 진행된 와중에도
침착맨 님께선 지금껏 7일 이상 휴식 기간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지 않으십니까?"

그... 그게 뭐 어쨌다고요?
침착맨 님.
언젠가 풍이 형님께서 제게 말씀하셨듯
침착맨 님도 한 번쯤은 제대로 푹 쉬어줄 필요가 있단 말씀입니다.
아니, 누가 쉬기 싫대?
나도 쉬고 싶었어!
언젠가... 채널의 성장 추이가 잠깐 꺾일 때가 도래했을 때
나도 한 번쯤은 재충전의 시기를 가지고 싶었다고!

그치만 한 번 제대로 흐름을 탄 이래로 계속 방송이 잘 나가는 걸 어떡해?
솔직히... 이거 아까워서 도중에 어떻게 끊고 가겠냐고!

…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늘 건강하던 호민 형님께서 저리 약한 모습을 보이시는 게 아무래도 좀 맘에 걸려서...
(지금부터는 화면에 MZ하고 영한 필터가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하...
궤도 님.
지금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이 짧은 시간에도
벌써 4만 명의 신규 구독자가 새로 들어온 거 아세요?
4만 명이나요?!
그래요
4만명.
아, 이젠 4만 3천 명이네.
컨텐츠가 컨텐츠라 그런지 이번엔 이집트분들 비중이 꽤 높구만?
...이집트라면?

예...
이집트 강연이 평생 컨텐츠가 될 거라고 소장님께서 처음 말씀하셨을 때
반쯤은 농담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설마 지금까지도 이어질 거라곤...

설마...

왜요?
궤도 님은 과학 외의 분야엔 딱히 관심 없으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혹시 뭐 따로 아시는 거라도?

...
최근 국제 인공지능 학회에 한 이집트 유물에 대한 분석 의뢰가 들어왔었습니다.
이집트랑... AI요?
근래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과거의 흔적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생활상을 재현하는 일이 꽤나 흔해졌으니까요.
아무튼... 그래서요?
그 유물이 고고학 분야만 아니라 인공지능 부문에 있어서도 큰 파장을 불러왔던 만큼
트렌드에 민감하신 민수 형님께서 혹시 그 유물과 관련된 얘기를 해주신 게 아닌가 싶어서요.
아하~ 그거라면...
(주섬주섬)

혹시 이것들을 말씀하신 거에요?
어?!.
이걸 어떻게 침착맨 님께서...
에이~ 궤도 님도 참.
나 침착맨이야!
물론 처음엔 강연 목적으로 소장님께서 대여해 오셨었지만
디자인이 꽤 맘에 들어서 반쯤 농담 삼아 개인적으로 소장 좀 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잠시 고민 좀 하시더니 괜찮다고 하시던데?
아니, 잠깐
자기 물건도 아닌 대여한 물건을 두고
민수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요?


양'놈'들한테 다시 맡기는 것보단 침착맨 님한테 맡기는 게
한국인... 아니, 인류를 위해 여러모로 더 유익한 길일 수도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렇게 둘러대면 학회 사람들도 충분히 납득할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땐 무슨 이집트 연구 학회겠거니 했는데... 그게 AI 학회였구나?
음...
원숭이랑 강아지는 알아보겠는데...
이건 새는 확실하지만 매인지 닭인지 구분이 안 가고...
맨 왼쪽에 이건 돼지인가요?

아이, 궤도 님도 참!
딱 봐도 사람이잖아요, 사람!
사람이라고요?!
이 사이즈가???
왼쪽부터 사람, 개코원숭이(비비), 매, 자칼을 형상화 한 거라고 소장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궤도 님이 과학 쪽에 정통하단 건 예전부터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이런 쪽으론 좀 약하시구만?

...정말 괜찮은 겁니까?
수천 년 전 물건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에이~ 이 키노... 카누.... 아무튼 이 단지 같은 거에 무슨 힘이 있다고 또 그래!
궤도 님도 나이가 들더니 풍이 형처럼 미신에 길들여지신 거에요, 설마?
그런 게 아닙니다, 침착맨 님.
네?
혹시... 단지 안을 살펴보셨습니까?
안이요?
안까지 살펴보진 않았는...
으어아아악!!!!
조심하십시오, 침착맨 님!
ㅂ... 바... 바바바... 방금 저거 꿈틀댄 거 같은데?!
진정하십시오, 제가 잡았습니다.

후우....후우...
뭐... 뭐야? 왜 갓 죽은 것만 같은 장기가...
결국 우려했던 일이...
어떻게 된 거죠, 이게?
침착맨 님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그 단지는... 한 잊혀진 파라오의 장기들을 담은 항아리
카노푸스(Canopic jars)입니다.
카노...푸스?!
마... 맞아요, 그런 이름이었어.
어?! 그런데 궤도 님은 어떻게 그 이름을...?

…
아... 아무튼 그...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예요?
마... 맞아!
분명 예전에도 소장님께서 준비해오신 PPT로 지나가듯이 이런 단지들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미라를 제작할 때 쓰는 이 항아리에 뭐 특별할 거라도...?
수천 년 전 적출되어 이미 풍화될 대로 풍화되어야 마땅한, 주인을 잃은 장기가
아직까지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부터
이미 기존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일이죠.
그... 그렇긴 하죠.
문제는... 저도 지나가며 들은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에서 신으로 불렸던 다른 파라오들과 다르게

...이 파라오는 정말로 신에 가까운 권능을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학회 사람들로부터 오고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네?!
과학을 업으로 삼은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애써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침착맨 님이 직접 보여주신 유물을 눈 앞에서 관찰하고나니...
정말로... 아인슈타인의 등장 이래 고전 역학에 대한 얘기들을 다시 써내려 가야만 했던 것처럼
기존의 사고의 틀을 완전히 깨부숴야 할 시기가 재차 도래한 걸지도 모르겠군요.

그것도 제 관심사 밖의 영역이었던 고대 이집트 문명으로 인해서 말이죠.
어?!
...설마?
왜 그러십니까, 침착맨 님?
제가 아직 그날 소장님과의 합방을 보진 못해서 자세한 내막까진 잘 알지 못하는데
혹시 이것에 대해 민수 형님으로부터 뭔가 따로 들은 얘기가 더 있으신지요, 침착맨 님?
그게...
…

어... 병건아, 왔어?
호민이 형... 몸은 좀 괜찮아?
어... 나야 괜찮ㅈ... 쿨럭쿨럭!
호민이 형!!!
환자분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뒤로 물러나주십시오, 침착맨 님!

뭐예요, 이거?
호민이 형 금방 괜찮아지는 거 아니었어요?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그게... 나노봇을 투여해 손상된 장기들을 복구하려 시도했지만
이상하게도 회복이 잘 되는가 싶다가도 금방 다시 손상이 진행되어 저희로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마치... 손상된 상태로 유지되는 걸 장기 스스로도 바라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죠.
뭐라고요?
당신 의사잖아! 어떻게 환자를 앞에 두고 그딴 무책임한 말을 함부로..
.

진정하십시오, 침착맨 님.
침착맨 님의 '영혼의 반쪽'과도 같은 주펄 님을 함부로 대할 만큼
저희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진 않았으니까요.
...하
...아무튼 그래서요?
현재 간, 폐, 위, 장 할 것 없이 펄 님의 거의 모든 장기들이 정상이 아닌 상태이지만
유일하게 칩으로 대체된 뇌와 더불어 딱 하나 멀쩡한 장기가 있습니다.
바로 '심장'이죠.
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자세한 원인은 저희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상황입니다만...
심장만이 멀쩡히 돌아가는 원인을 밝혀낸다면
다른 장기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해결책을 역으로 도출해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심장... 심장이라...
침착맨 님?
뭔가 짚이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니에요!
그럼... 호민이 형을 잘 부탁드립니다.
…
...기록된 바에 따르면 이 파라오는 병자를 낫게 하고 앉은뱅이를 다시 일으키는 기적을 선보였다고 전해져요.
게다가 확실한 매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정 수준의 미래 예지도 가능했는지
나일강의 범람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여 그의 치세 아래 매해 농사가 풍년이었다고 얘기가 적혀있는 걸 보면.
살아생전 당시 백성들로부터 창조신의 현신이라 불렸다는 게 전혀 과장이 아니었음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죠.

오... 신기하네요, 정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혹시 기상청도 고대 이집트가 제일 먼저 고안한 건가요, 소장님?
크크크, 이집트가 선두를 달리는 분야가 정말x100 많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상청을 제일 먼저 설치했다는 기록은 저도 본 적이 없는 것 같군요.
아니, 그렇다고 해서 안타까우실 것까지는…
아무튼 아직 놀라긴 이르십니다, 침착맨 님.
네?

이 파라오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렌(Ren)... 그러니까 본인의 진명을 부르면
자신의 권능을 불러내는 게 가능할 거라고 평소 신하와 백성들에게 누차 강조하였다고 해요.
죽은 뒤에도요?
아니, 잠깐만요.
소장님
네, 침착맨 님.
소장님께서 강의 초반부에 이 파라오에 대해 처음 설명해주셨을 때
이 파라오의 렌? 여하튼 그... 이름에 대한 기록이 모두 소실되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었죠.
그럼 소장님... 대체 왜 그런 신묘한 능력을 지닌 파라오의 이름이 모든 문헌상에서 다 지워지고 역사적으로도 존재 자체가 반쯤 부정되어야만 했던 걸까요?

정말 안타깝게도 그 이유를 서술한 기록들은 모두 유실되어 지금으로선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아쉽네요, 뭔가.
다만...
다만...?
지금으로부터 약 5400년 전, 이 파라오와 동시대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도공의 유골이 유물이 발굴된 장소 근처 동굴에서 발견되었으니
운이 좋으면 그의 의식을 부분적으로나마 살려내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오~ 그거 정말 다행이네요.
세상이 많이 좋아졌어요, 기원전 34세기 사람도 마음대로 불러낼 수 있고.
'호민이 형.'

크크크, 저도 이럴 때마다 괜히 궤도한테 고맙다 말이라도 해주고 싶더라구요.
'내가 반드시.'

그럼 소장님.
미리 말씀 드리지만 커피 한 잔의 여유처럼 아주 가볍게나마...
인공지능이 이 파라오의 비밀을 풀어내기 전에
온전히 소장님의 식견만을 통해 이 파라오에 대한 진실이 오랜 시간 베일에 가려져야만 했던 원인을
지금 이 시간을 빌어 미리 예언하듯 한번 추측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형을 원래대로 돌려줄게.'

오! 그거 꽤나 재밌는 시도가 될 것 같군요.
역시 100억 유튜버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침착맨 님.
왠지 소장님이라면...
인공지능보다도 한 발짝 앞서서 그 이유를 미리 파헤치는 것도 가능하실 것 같은데...
그리고 늘 말씀하셨듯, 이런 걸 또 이집트 쪽에서 제일 먼저 하지 않으면 섭섭하잖아요?
'그리고 같이...'
.

침착맨 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고 한들, 그것이 결코 넘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은 늘상 존재해왔었죠.
특히 고대 이집트 관련 분야는 그런 쪽으론 가장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구요, 으허허-
'다시 방송을 하는 거야.'

어? 방금 그 말씀, 혹여나 기계감수성 충만한 궤도 님께서 들으신다면 또 뭐라 한소리 나올 것 같은데요?
들으라고 하죠 뭐 크크크,
과연... 세월이 흘러도 이 민수들 간의 영역 다툼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네요.
자, 그럼 소장님!
어디 한번 시원하게 소장님의 의견을 여기 이 시청자분들 앞에 제대로 피력해보시죠!
보자... 제가 추측하기에는...
'영원히!'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