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관심없어도 알았으면 하는 낭만 넘쳤던 이번 파이널
<준우승팀 : 마이애미 히트>

1.인간 승리 에이스 지미 버틀러

2.히트 컬쳐

히트 컬쳐란, 사장 팻 라일리를 필두로 하는 마이애미 히트만의 농구를 대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한 마디로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2006년 우승 멤버 중 한 명인 개리 페이튼의 말을 빌리자면 ‘어떻게 이길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히트 컬쳐는 한 명의 에이스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기를 원치 않는다.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뿐 아니라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 또한 자신의 몸에 수분 한 방울 체지방 1그램도 남기지 않고 독하고 처절하게 싸우기를 원한다. 42살의 노익장 우도니스 하슬렘은 경기에 뛰기에는 너무 연로하지만 여전히 아침마다 벤치 멤버들을 불러서 3 on 3 시합을 빡세게 돌린다. ‘빅3’보다 ‘리틀 12’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인 것이다.
언론과 여론은 신경쓰지 않는다. 오로지 팀원, 감독 에릭 스폴스트라, 사장 팻 라일리의 인정을 받기 위해 마이애미 선수들은 싸운다. 설령 상대와의 전력차가 상당해서 패배가 뻔해보인다 해도, 승리로 증명하여 기자들과 헤이터들을 닥치게 만든다. 그것이 마이애미 히트의 농구다.
3.8번 시드와 8명의 언드래프티

정규 시즌에서는 큰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한 마이애미 히트는 8번 시드로 간당간당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시드의 순위가 크게 의미가 없는 NBA라지만, 농구를 잘하는 팀이 더 높은 시드를 부여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8번 시드가 높은 곳까지 올라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역대 파이널 우승팀 중 가장 낮은 시드였던 팀은 94-95 시즌 6번 시드를 받고 우승한 휴스턴 로키츠다. 8번 시드가 파이널 무대까지 진출한 경우는 98-99 시즌 뉴욕 닉스가 유일무이했다. 플레이-인 토너먼트 제도로 인해 마이애미 히트는 다른 팀들보다 2경기를 더 치뤘기 때문에 1라운드에서 탈락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욱이, 플레이오프를 하기 전 마이애미 히트는 주전 내지는 벤치 에이스로 활용하던 타일러 히로와 빅터 올라디포가 부상으로 이탈했다. 팀내 2 ~ 3번째 스코어러인 히로와 핵심 교체 멤버로 활용하던 올라디포의 시즌 아웃은 치명적이었다.
결국 마이애미 히트는 15명의 가용 멤버 중 2명이 부상으로 빠지고, 8명이나 되는 언드래프티들을 믿고 경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언드래프티란 드래프트에서 선택되지 못한 선수들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언드래프티 출신 선수는 벤 월라스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경쟁이 빡세기로 유명한 NBA에서 살아남기에는 경쟁력이 너무 약한 선수들이었다.
아무튼 마이애미 히트는 던컨 로빈슨, 게이브 빈센트, 맥스 스트러스, 케일럽 마틴 등의 언드래프티를 주전으로 기용한다.
4.언더독의 열풍

마이애미의 1라운드 상대는 1번 시드 밀워키 벅스였다. 공수 양면에서 고른 활약을 보인 그리스 괴수 아데토쿤보가 이끄는 밀워키를 상대하기에 마이애미의 라인업은 너무나 초라했다 한 판이라도 따내면 충분히 잘 싸웠다는 평을 듣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력차는 어마무시했다. 그러나 히트 컬쳐로 다져진 마이애미의 응집력은 그들을 농알못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마이애미의 늪과 같이 질퍽한 수비에 밀워키 공격진들은 쉽게 해답을 찾지 못했다. 특히 지미 버틀러는 5차전에서 42득점을 휘몰아치고 위의 사진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자세에서 위닝샷을 성공시키면서 밀워키를 수렁에 빠뜨렸다.
마이애미의 2라운드 상대는 ‘뉴욕의 왕’줄리어스 랜들과 제일런 브런슨이 이끄는 뉴욕 닉스였다. 밀워키와의 일기토에서 이미 만신창이가 된 버틀러였지만 마이애미는 그만의 팀이 아니었다. 빈센트는 중요한 순간마다 투입되어 수비로 팀을 도왔고 던컨 로빈슨과 맥스 스트러스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케일럽 마틴은 언드래프티 출신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균일하게 좋은 활약을 펼쳤다. 결국 뉴욕은 잦은 턴오버와 슛 미스로 자멸하고 만다.
운명의 장난처럼 마이애미는 작년에 이어 또다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만난다.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보스턴에게 컨퍼런스 챔피언의 명예를 넘겨주었던 작년의 설욕을 하겠다고 선언한 지미 버틀러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는지, 마이애미는 수비 명가 보스턴을 상대로 먼저 3판을 따내며 기선을 제압한다. 갈릴 대로 갈린 버틀러의 부진으로 3판을 다시 내리 내주며 역대 최초 역스윕당하는 팀이 되는가 싶었지만, 기복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던 마틴의 활약으로 마이애미는 보스턴에게 복수함과 동시에 파이널에 진출했다.
비록 파이널에서는 뱀 아데바요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다소 부진하면서 덴버에게 파이널 우승을 내주었지만, 엄청난 패기로 챔피언 컨텐더들을 제압한 마이애미를 조롱하는 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플레이오프 때 홈에서 한 번도 진 적 없었던 덴버에게 첫 패를 안겨주었고, 많은 팀들이 해답을 찾지 못했던 요키치-머레이의 투맨 게임을 어느 정도 제어했다. 마이애미가 운이 좋아 파이널에 진출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버틀러는 누가 봐도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 영향은 없었다. 상대가 너무 잘했고 내 실력이 모자랐다.”라고 인터뷰하며 덴버를 존중하고 우승을 축하했다.
<우승팀 : 덴버 너기츠>

1.2라운더 에이스 니콜라 요키치

2014년 드래프트 때, 그 누구도 세르비아 출신 떡대 돼지(같아 보이는) 파워포워드를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르비아 리그 자체가 너무 좁기도 했고, 스피드와 점프력이 낮은 빅맨을 제대로 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키치는 2라운드 11픽, 즉 전체 참가자 중 41번째로 덴버 너기츠에게 선택된다. 허나 1라운드 드래프트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지는지라 요키치가 방송을 타려는 순간 방송국은 타코 광고를 틀어버렸고, 여전히 위의 사진은 밈처럼 쓰이고 있다.
2라운더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지 첫 해의 요키치는 많은 출전시간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꾸준히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기량이 만개할 조짐이 보이더니 결국 퍼스트 루키팀을 따냈고, 3년차부터는 큰 키를 활용한 기상천외한 패스 라인으로 어시스트 능력까지 장착하면서 트리플 더블 머신이 된다.
요키치는 다소 떨어지는 운동기량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힘을 이용한 박스아웃을 통해 리바운드를 잡아내고, 농구지능이 굉장히 좋아 전문가들도 생각하지 못한 길로 패스를 한다. 거기에다 높은 고각을 이용한 3점슛까지 장착하는 등 사실상 알고도 못 막는 수준의 우주 1옵션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역대 시즌 MVP 중 가장 드래프트에서 늦게 뽑힌 선수라는 기록울 남겼다.
2.자말 머레이와 말동님

요키치는 든든한 2옵션 가드인 자말 머레이와 훌륭한 호흡을 선보였다. 16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 뽑힌 머레이는 기복이 심한 편이라 ‘주사위 슈터’, ‘가챠 슈터’라는 별명이 붙기는 했지만 대단한 신체 능력과 한 번 불이 붙으면 좀처럼 꺼질 줄 모르는 핫 핸드로 요키치를 든든하게 보좌했다. 요키치의 수준 높은 패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서 득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21년,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에서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끔찍한 부상을 당한 그는 무려 1년 반 동안 경기를 뛰지 못한다. 같은 시기에 주전 스몰 포워드였던 마이클 포터 주니어도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하며 덴버는 말 그대로 차와 포를 떼고 요키치 혼자서 농구하는 꼴이 되었다. 그 탓에 요키치는 2번 연속 시즌 MVP를 차지할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선보였지만 팀을 컨퍼런스 파이널로 이끄는 데에는 실패하고 만다.
스피드와 운동 능력으로 승부를 하던 가드에게 전방십자인대 파열은 대단히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머레이는 자신이 트레이드될 것임을 직감하고 마이클 말론 감독을 찾아가 “저는 망가졌습니다. 저를 트레이드하실 건가요?”라고 울면서 물었다. 그러나 말동님은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너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도울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너는 더 훌륭한 선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말로 격려했다고 한다.
3. 전설의 덴버 완전체

한편, 올랜도 매직의 포워드였던 애런 고든은 NBA 역사 상 가장 치열했던 잭 라빈과의 덩크 콘테스트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큰 기대를 받던 루키였다. 하지만 뛰어난 운동능력과 수비 실력과는 반비례하는 돌파 능력과 공격 옵션으로 ‘덩크 원툴’이라는 오명까지 얻게 된다. 우승에 대한 열망이 컸던 고든은 트레이드를 통해 20-21 시즌 덴버에 입성했고, 인생의 귀인인 요키치를 만나게 된다.
독박농구 수준으로 혹사했지만 볼멘소리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했던 요키치의 지극정성이 통한 것일까. 마이클 포터 주니어와 자말 머레이가 복귀한 22-23 시즌의 덴버의 공격력은 깡패 그 자체였다. 빅맨인 주제에 가드 수준의 패스를 뿌려대고 3점슛까지 가능하며 힘으로 우당탕탕 밀어붙일 수 있는 요키치는 말 그대로 미친 놈이었다. 3점 옵션이 출중한 마이클 포터 주니어, 수비를 찢는 스플릿 능력이 좋은 머레이, 요키치가 올려주는 앨리웁 패스를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애런 고든의 합은 리그 최정상급의 공격을 보여주었다. 공격 옵션이 하도 다양해서 상대 수비가 완벽하게 커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애런 고든을 제외하면 모두 덴버가 드래프트에서 뽑아서 직접 키운 인재들이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빅클럽을 만들기 위해 팀을 이적하고 단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하는 것이 당연해진 현 NBA에서, 선수들이 장기 부상을 당해도 묵묵히 믿어주고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한 뚝심과 의리의 덴버 농구는 마침내 그 결실을 맺을 준비를 마쳤다.
4. 56년을 기다린 광부들의 우승

마치 요키치가 우승할 자격을 갖췄는지 판단하기 위한 시험을 마련한듯이, 1번 시드를 차지한 덴버의 상대들은 다 막강한 빅맨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고베어와 KAT의 트윈타워를 가지고 있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즈, 정통 빅맨의 계보를 잇고 있는 디안드레 에이튼의 피닉스 선즈, 누구도 상대가 안 된다는 전설의 건강한 앤서니 데이비스가 있는 LA 레이커스를 각각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하지만 덴버의 공격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으며 말 그대로 파죽지세로 파이널 무대까지 진출한다. 특히 LA 레이커스를 4:0으로 스윕할 때 ‘저 새끼를 도대체 어떻게 막냐’라는 표정으로 허탈하게 웃던 AD의 씁쓸한 미소가 모든 상대 팀들의 심정을 대변해주었다.
파이널에서 만난 마이애미는 최선을 다해 덴버를 수비했지만 고대 괴수가 부활한 듯한 요키치의 활약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역대 기록들을 다시 세웠다. 플레이오프 20경기를 치루면서 10번의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고(역대 최초), 파이널 이전 세 라운드에서 평균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고, 최초로 단일 플레이오프에서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단일 플레이오프에서 최초로 500점 이상 득점, 리바운드 250개 이상, 어시스트 150개 이상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이로써 덴버는 창단 56년 만에, NBA에 참가한지는 47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소위 인구가 많고 수익률이 좋은 빅 마켓도 아니고 적극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빅클럽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없었음에도 요키치를 중심으로 한 단단한 팀 구축으로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자신을 버리지 않은 구단에 대해 감사를 표현한 머레이와, 저니맨 생활을 하며 말년에 생애 최초로 파이널 반지를 얻은 엉클 제프 등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지만 단연 돋보인 것은 요키치. 우승을 하고도, 파이널 MVP를 받고도 그닥 기뻐하는 기색 없이 침착하게 마이애미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단체 사진에서도 센터 자리를 양보하는 등 훌륭한 스포츠맨십을 보였다.
(위의 사진을 보면, NBA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가운데 트로피를 두 개 들고 있는 머레이가 요키치이고 보는 사람 기준 왼쪽에서 옷도 안 갈아입고 있는 사람은 벤치 멤버라고 생각할 것 같다.)
덴버와 마이애미의 결승전은 테크니컬 파울이 한 번도 불리지 않은, 역대급으로 깨끗한 파이널 경기였다. 말론과 스폴스트라 감독의 불꽃 튀는 전술 대결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히 절대 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요키치와 머레이의 투맨게임을 파훼한 마이애미의 지략이 돋보였다. 덴버가 요키치를 중심으로 왕조를 건설할 수 있을지, 버틀러가 다시 한 번 낭만 농구를 보여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파이널 경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