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 초구 공략과 kt의 파격
플옵 2차전에서 가장 빛난 건 단연 NC 선발 신민혁이었습니다. 막판 에러가 끼는 등 흔들리긴 했지만 그 전까지의 피칭은 완벽했습니다. 6.1이닝 1피안타 무실점, 투구수는 81개에 불과했습니다.
극도로 적은 볼넷/탈삼진과 투구수에서 알 수 있듯 kt 타자들은 신민혁의 공에 매우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1회부터 5회까지, kt 타자들이 5구 이상 승부를 가져간 건 단 두 차례였습니다. (3회 박경수/4회 박병호)
‘초구를 친다’는 건 많은 팬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행동입니다. 10번 기회 중 3번 성공하면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게 야구인데, 타석 들어서자마자 딱 치면 70%의 확률로 죽으니 굉장히 허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준플옵에서 추격 투런 치자마자 초구 내야뜬공으로 죽은 최지훈이 어떤 욕을 먹었나 생각해보면…
그럼 올해 실제로 초구를 쳤을 때의 결과는…
* 23시즌 카운트별 타율 & OPS (스트-볼 순서)
-0-0 : .329/.804
-0-1 : .340/.871
-0-2 : .326/.904
-0-3 : .367/1.704
-1-0 : .318/.746
-1-1 : .331/.812
-1-2 : .351/.893
-1-3 : .338/1.280
-2-0 : .179/.407
-2-1 : .191/.446
-2-2 : .209/.506
-2-3 : .220/.804
이렇게 나옵니다. 다라이님의 또동열 또구학에서 ‘초구가 스트가 되면 OPS가 2할이 어쩌고…’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입니다. 타자가 유리한 카운트(볼>스트)와 반대의 상황(볼<스트)의 격차는 꽤 큰 편입니다.
초구 타격은 저 중 중립적입니다. 1-1보다 좀 나쁜 수준이고, 스트라이크가 더 많은 상황보다는 확실히 낫습니다. 즉, 초구 타격 자체는 문제로 삼기 애매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칠거면 잘 쳐라’가 되겠죠.
플옵 2차전에서 kt의 공격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빠르게 승부를 보려는 경향이 전반적으로 매우 강해보였는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신민혁의 투구수만 절약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kt의 이 전략은 의도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인데,

-올해 신민혁의 초구 피OPS는 0.852입니다. 이는 표본 자체가 작은 0-2(3타석), 1-2(20타석), 1-3(19타석)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kt의 올 시즌 초구 적극성은 26.9%로 리그 8위, 타석당 투구수는 3.97개로 리그 최다 1위입니다. 즉, 올 시즌의 kt는 타석에서 비교적 많은 공을 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추가로, 올 시즌 kt의 초구 OPS는 0.828로 리그 3위입니다. 즉 빠른 승부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공이 오면 카운트를 그다지 가리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즉, ‘초구 성적이 좋지 못한 투수 상대’로 ‘평소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타선인데 노리는 건 확실하게 치는 타선’이 만나서 ‘빠른 승부’라는 결과가 도출되었다면? 경기에 임하기에 앞서 빠른 승부를 전제로 하되 실전에 들어가니 뭔가 꼬였을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풀이는 그럴 듯한데 답이 틀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kt는 단기전에서 이런 변칙적인 접근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2020 플옵 황재균 1번/강백호 2번 : 아예 강백호 1번 카드까지 고려했다고 하는데, 이론상 강백호의 높은 출루율로 중심 타선에게 기회를 깔고 하위 타선이 상을 차리면 강백호가 받아먹는 것도 된다는 논리였지만 망했습니다. 1차전에서 실패하고 다음부터는 그냥 하던대로 돌렸고요.
-2021 코시 2선발 소형준 : 이건 데이터라기보다는, 포수 장성우의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였다고 합니다. 원래는 2선발 소형준 - 3선발 배제성이었는데 그것까지는 못 받아들여졌는지 3선발은 데스파이네가 나오긴 했지만, 포수의 감으로 선발을 정한 변칙적인 광경이었습니다.
-2023 플옵 신민혁 빠른 승부 : 논리는 나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가 따라주지 못했습니다.
남의 팀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저는 이런 류의 파격이 굉장히 흥미롭게 보입니다. 특히 그 파격이 감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결과라면 더더욱.(개인적으로는 20플옵 1번 강백호 가능 얘기에 굉장히 설렜습니다.) 신민혁의 볼이 오늘 특히 좋았던 건지,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경기장을 둘러싼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