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 피타고리안 승률과 기괴한 2023 랜더스

저한테 누가 ‘크보에서 예상이 안 되는 팀을 뽑아달라’라고 묻는다면 저는 SSG를 뽑습니다. 이길 것 같아도 불안하고, 분명 게임이 터진 것 같은데 뒤집는 기묘한 모습을 하도 보여주는데다 날 더워지면 쳐지고 선선해지면 다시 올라가는 종특까지, 이래저래 예상이 참 어려운 팀입니다. 작년에 와이어 투 와이어를 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도 없었을 것 같고요.

https://n.news.naver.com/sports/kbaseball/article/076/0004069240

피타고리안 승률 관련 기사가 나왔습니다. 피타고리안 승률은 ‘야구는 득점 많이 하고 실점 적게 하면 강팀이다'라는 단순한 논리 하에 만들어진, 팀의 득점과 실점을 이용해 계산하는 일종의 ‘기대 승률’입니다. 즉 ‘이만큼 점수 내고 이만큼 점수 줬으니 니네는 이 정도 승률을 찍었겠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계산식은 좀 다양한 편인데, 여기서는 가장 계산하기 편한 ‘득점 제곱/(득점 제곱+실점 제곱)’으로 구했습니다.

기사에서 피타고리안 승률을 따지면 SSG가 7등이 된다고 하는데, 대충 엑셀로 돌려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놀랍게도, 실점이 워낙 많았던 탓에 23 랜더스의 피타고리안 승률은 0.471입니다. 올해 7등인 롯데의 승률이 0.472였으니, 저대로 시즌이 돌아갔다면 SSG는 롯데보다 못한 팀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기대 승률보다 많이 잘했네 ㄷㄷ’라고 하기에는 23 랜더스는 그 정도를 벗어났습니다.

2020년 이후, 리그에서 피타고리안 승률-기대 승률 간의 차이가 가장 큰 팀, 즉 ‘기대치보다 훨씬 잘한 팀’의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2023년의 SSG 랜더스는, 2020년 이후 가을야구를 한 팀 중에서 ‘기대치보다 가장 잘한 팀’이 됩니다. 아주아주 거칠게 말하면 ‘니네 그 정도 아닌데 왜 여기까지 왔냐?’라고 할 만한 수준입니다.

* 2021년의 기아는 실제 성적도 좋지 못했지만(9위) 기대 승률은 더 좋지 못한, 이걸 좋아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로 받아들여야 하는 더 기묘한 상황이긴 합니다.

더 신기하게, 랜더스는 작년에 이어서 2년 연속으로 상당한 피타고리안 승률-실제 승률의 갭을 보였습니다. 그나마 작년은 득실점의 밸런스는 괜찮은 편이었다면, 올해는 득실점 밸런스까지 깨졌는데도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한 셈입니다. 

당연히, 올해 가을야구를 하는 팀 중 랜더스의 피타고리안 승률은 가장 낮습니다.

-1위 LG 0.613

-2위 NC 0.548

-3위 kt 0.543

-4위 두산 0.496

-5위 SSG 0.471

(* 기아 피타고리안 승률 0.555. 기아 팬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2년 연속으로 벌어진 기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1. 불펜이 잘했다 : 득점과 실점의 갭을 키울수록 잘 나오는 피타고리안 승률의 특성 상 1점차 승리가 잦은 경우는 손해를 보기 쉽습니다. 흔들리긴 했어도 정말 이악물고 막았던, 노경은-고효준-서진용 덕분에 여기까지 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 가을 DNA다 : 팀 케미스트리, 베테랑들의 경험 같은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분야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마 선수단에게 물어보면 ‘우리 팀 분위기 좋긴 하지ㅇㅇ’라고 하겠지만, 증명할 수가 없는 영역이니 논외입니다.

3. 그냥 하늘이 도왔다 : 가능한 얘기입니다. 하늘이 23년의 랜더스를 보살펴서 3위를 했을 수도 있는데, 일단 작년에도 이 팀은 꽤 큰 갭을 보였고 입증이 불가능한 영역이니 이것도 논외입니다.

이외에도 피타고리안 승률의 계산 방법 자체가 나타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고… 가능성은 여러가지지만,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겁니다.

참고로 LG 팬 분들은 하늘을 좀 탓해도 되는데,

* 2020~2023 LG 트윈스 피타고리안 승률 순위

-2020 : 2위 0.572 (실제 승률 0.564)

-2021 : 1위 0.576 (실제 승률 0.554)

-2022 : 1위 0.654 (실제 승률 0.613)

-2023 : 1위 0.613 (실제 승률 0.606)

그러니까, LG는 이론 상으로는 진작 한 번은 반지를 꼈어야 하는 팀입니다. 올해는 그 한을 풀어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