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수학계 도시전설들
수업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학생이나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대학원 수업중에도 학생들의 집중을 환기시키고자 교수님들께서 종종 농담을 준비해오시곤 합니다.
대학원 레벨의 교수님 농담은 대부분 '내 동료 수학자가 겪은 일인데...' 혹은 '내 지도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건데...'로 시작합니다. 가끔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컬투쇼 에피소드를, 가끔은 '에이 설마' 싶은 어메이징한 에피소드를 풀어주시죠.
진실만을 천명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수학자들도 유머 앞에서는 제 의무를 내려놓습니다. 대부분 '그랬다나 뭐라나? 근데 설마 진짜 그랬겠어?' 하고 웃으며 넘어가죠.
이와같은 농담이 워낙에 많다보니 수학자들의 지식in인 Math Overflow에도 '수학 도시 전설' 스레드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이 스레드에 글을 올리시거나 댓글을 다시는 분들이 다 수학계에서 방구 깨나 뀌시는 분들입니다. 흐흐흐
오늘은 해당 스레드에서 읽었던 도시전설들을 한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1.
대수기하학을 연구하는 두 대학원생이 학회를 참석하기 위해 공항에 갔다. 둘은 공항에서도 열심히 수학 토론을 즐기며 비행기 탑승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공항 경찰들이 다가와 그들을 체포했다. 그들이 테러를 모의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면의 점들을 부풀리기(blowing up points on a plane)'에 대해 토론 중이었고, 그것은 ‘비행기의 여러 지점을 폭발시킨다(blow up points on a plane)’로 해석될 수 있었다. 대학원생들은 공항 경찰에게 '평면의 점을 부풀리는 기법'에 관한 대수기하학 강의를 한 차례 한 뒤에 풀려날 수 있었다.
2.
어느날 하버드에 아주 전도유망한 교수가 임용되었다. 그는 연구에는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지만, 학부생들을 상대로 하는 수업에는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는 동료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일부터 미적분 개론을 가르쳐야 하는데 뭘 가르쳐야할지 모르겠어."
동료교수는 으쓱이며 말했다. "별거 있어? 극한, 연속성, 도함수, 미분가능성, 적분 뭐 이런것들 가르치면 되지."
교수는 동료 교수의 조언에 따라 첫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그는 곧바로 동료 교수에게 찾아와 물었다.
"그래 다 가르쳤어. 다음번 수업에선 뭘 가르쳐야하지?"
3.
20세기 수학계의 전설 힐베르트는 무한 차원 완비 내적 공간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수학자들은 해당 공간을 '힐베르트 공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날 힐베르트는 괴팅겐에 열리는 세미나에 참여했다. 세미나 발표자는 '힐베르트 공간'에 관한 몇 가지 결과들을 소개했다. 강연이 끝나고 난 뒤 힐베르트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래서 힐베르트 공간이 뭐란 말이오?”
4.
X라는 이름의 일본인 수학자에겐 Y라는 이름의 학생이 있었다. Y는 Z라는 대학교의 조교수로 일하기 위해 X교수에게 추천서를 부탁했다. X는 흔쾌히 수락했고, Y의 칭찬이 가득 담긴 추천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추천서 말미에 다소 의아한 글귀가 있었다.
"그러므로 Y군은 내가 아는 2류 수학자 중 가장 훌륭한 수학자라 할 수 있겠소."
추천서를 읽은 Z대학 수학과 교수들은 어리둥절했다. Y가 수학을 잘한단 뜻인 건지 못한단 뜻인 건지. 이것이 X교수의 농담인건지 아닌지. 그들은 아마도 X교수의 제1 언어가 영어가 아니다보니 실수한 해프닝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고, 확인차 X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교수님, Y군이 2류 수학자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자 X교수가 답하길,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군. 당신네 3류 학교에 일하기엔 과분한 2류 수학자란 뜻이오."
5.
수학자 괴델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오펜하이머가 몸담았던 프린스턴 고등 과학원에서 연구하며, 아인슈타인과 친분을 쌓았다.
어느날 그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미국 시민권 시험을 치르러 갔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이미 시민권을 획득했고, 시험의 증인으로 참석했다.) 시험장에 가는 길에 괴델은 아인슈타인에게 말했다.
"내가 봤을 때 미국 헌법에는 이런 모순이 있어, 이 모순을 이용하면 독재자가 나올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겠더군."
아인슈타인은 괴델에게 시험 도중에 절대로 이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운좋게도 시험관은 아인슈타인의 시민권 시험을 맡은 인물이었다. 시험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고, 마지막에 시험관은 괴델에게 물었다.
"어떤가요 괴델씨. 미국에는 나치와 같은 독재정권이 나오기엔 힘들 것 같죠?"
괴델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발견한 미국 헌법의 모순과 독재 정권의 출범 가능성에 대해서 강연했다. 다행히 아인슈타인의 혼신이 담긴 변호로, 괴델은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
6.
IHES는 프랑스 고등 과학 연구소로, 수학계에 손꼽히는 연구소이다. X박사는 IHES에서 포닥(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수학자 그로모브와 같이 점심 식사를 가졌다. (그로모브는 베블렌 상, 카르탕 상, 울프 상, 스틸 상, 로바체브스키 메달, 교토 상, 보여이 상, 아벨 상을 수상한 레전드 수학자다.)
"그래요, X박사님께서는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나요?"
X박사는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소개했다. 그로모브는 아주 친절하게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의견을 나눴다.
다음날 X박사와 그로모브는 다시금 마주쳤다. 그로모브는 웃으며 물었다.
"그래요, X박사님께서는 '이제는' 무슨 연구를 하고 계신가요?"
7.
수학의 왕자 가우스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증명이 '아름답지 않으면' 서랍에 처박아두고 절대로 발표하지 않았다.
어느날 수학자 보여이는 획기적인 논문을 썼다. 가우스와 친분이 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연구결과를 들고 가우스를 찾아갔다.
"어떤가. 우리 아들의 새 발견.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가우스는 자신의 서랍을 열더니 종이 한 뭉치를 건넸다.
"글쎄. 당신의 아들을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과 같네."
가우스가 꺼낸 종이에는 보여이가 발견한 것들이 다 담겨져있었다.
보여이가 했다는 '획기적인 발견'은 무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었다.
7.5
이와 비슷한 일화가 또 있다. 어느날 수학자 자코비는 자신의 ‘타원 함수’에 관한 자신의 새 연구 결과를 자랑하기 위해 가우스를 찾아갔다. 마찬가지로 가우스의 서랍에는 이미 자코비가 발견한 것들이 모두 담겨있었다.
자코비가 물었다. "왜 이걸 지금껏 출판하지 않았나?"
"글쎄, 내가 보기엔 아직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라네. 분명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증명이 있을텐데 말이지."
자코비는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런가? 이것보다 더 추한 것도 여러편 출간하더만."
8.
수학자 그로텐디크는 대수기하학에 엄청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굉장히 추상적으로 사고했고, 덕분에 그의 학생들은 그의 수업을 들을 때마다 진땀을 뺐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불만을 터뜨렸다.
"그로텐디크 교수님. 예제를 하나만 주시면 안될까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로텐디크는 귀찮다는 듯이 답했다.
"그래, p가 소수(1과 자기자신으로만 나뉘어지는 수)라 했지? 뭐 57이라고 두자."
덕분에 57은 소수가 아님에도 '그로텐디크 소수'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9.
이고르 탐은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은 러시아의 물리학자다. 그가 우크라이나에 오데사 대학에서 교수로 일할 때, 러시아 혁명이 벌어졌다. 그는 음식을 구하기 위해 근처 마을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아뿔싸, 음식을 찾으러 가는 길에 무장한 산적떼와 마주했다. 산적들은 탐의 행색을 이상히 여겨 물었다.
"넌 직업이 뭐냐?"
"수학을 가르칩니다."
"그래? 그러면 매클로린 급수의 n번째 항의 오차범위는 어떻게 되지? 이걸 설명할 수 있다면 보내주겠다. 아니라면 널 죽이겠다."
탐은 차분하게 매클로린 급수의 n번째 항의 오차범위에 관한 강의를 했다. 강의를 다 들은 산적이 입을 열었다.
"정답이군. 집에 가도 좋다." (에듀케이티드 안산 ㅎㄷㄷ)
10.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진 존 내쉬의 추천서에는 단 3줄만 쓰여있다.
이 편지는 프린스턴 대학원에 입학 신청을 한 존 F. 내쉬 군의 추천서입니다.
내쉬 군은 19살이며, 6월에 본 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는 수학 천재입니다.